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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지예 기자 =
대선 토론에서 날선 공방을 주고받던 민주당 후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가 모처럼 화기애애한 자리에 함께 했다. 서로 연설에 나선 두후보는 재치있는 말로 좌중의 분위기를 띄웠지만 상대방에 대한 '뼈있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오바마와 롬니 두 후보는 18일 밤(현지시간)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천주교 뉴욕대교구의 연례 자선기금 모금 행사 ‘알프레드 E. 스미스 메모리얼 파운데이션 디너(AESMD)’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뉴욕 상류층 인사들이 만찬을 한 뒤 어린이 자선단체에 500만 달러를 기부하는 자리다.
AESMD는 1952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시작으로 매 대선 때마다 대통령 후보를 초빙해 왔다. 행사에 참석한 대선 후보는 관례적으로 상대는 물론 자기 자신을 웃음 소재로 삼는 장난기 어린 연설을 한다.
이날 턱시도와 하얀 넥타이를 착용하고 행사에 참석한 오바마와 롬니는 주최자인 티모시 도란 뉴욕대교구 추기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도란 추기경은 지난 8, 9월에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 대회 모두에서 연설한 바 있다.
먼저 연단에 오른 롬니는 고급스런 복장을 하고 행사에 참석한 자선가들에게 “부인 앤과 내가 평소에 집에서 입는 옷을 입고 드디어 긴장을 풀 수 있어 기쁘다”는 말로 웃음을 이끌어 냈다.
그는 이어 오바마를 바라보며 “임기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도 오늘 여기 멋진 옷을 입고 있는 분들을 따라 월도프 연회장을 살펴보러 왔다”며 선제수를 날렸다.
롬니는 “그의 꿍꿍이가 뭔지 생각해봐야 한다. 예컨대 ‘시간은 없는데 재분배할 건 너무 많아’ 같은 것 말이다”라고 말했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으로 정부 재정을 확보하려는 오바마의 정책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건실한 토론 실력이 “토론 전 65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 연단에 오른 오바마 역시 장난기 짙은 농담으로 응대했다.
오바마는 연단에 올라서며 “모두들 자리에 앉아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의자에 대고 소리를 지를 겁니다”라는 농담을 던졌다. 이스트우드가 지난 8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빈 의자를 가져다 놓고 오바마 대통령은 투명인간처럼 존재감이 없다고 비판하는 연설을 한 것을 비꼰 것이다.
그는 이어 “종전에 시내에 있는 가게 몇 군데에 쇼핑을 하러 갔는데 롬니가 이미 휩쓸었다는 걸 깨달았다”며 롬니가 쌓은 막대한 부에 대해 꼬집었다.
그는 1차 토론에서 부진했던 것에 대해 “2차토론 때 나는 훨씬 기운찼다. 1차토론 때 길고 기분 좋은 낮잠을 잤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기 때문”이라며 농담하기도 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오바마는 자신과 롬니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특이한 이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사실 미트는 롬니의 중간이름”이라면서 “나도 내 중간이름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롬니의 본명은 '월러드'다. 오바마의 중간이름은 ‘후세인’으로 이라크의 전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연상시키며 이슬람 교도라는 뉘앙스를 준다.
그러다가 오바마는 "일자리 문제에 대해선 농담을 하지 않겠다"고 정색해 오히려 좌중의 환호를 받았다. 그는 “내가 취임한 이래 실업률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모두에게 상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도란 추기경에게 오바마 대통령을 행사에 초대하지 말라고 탄원하기도 했다. 피임, 낙태, 동성결혼 등에 대한 오바마의 관점이 가톨릭의 입장과 대치되기 때문이다.
대교구는 낙태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존 캐리 후보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민주당 후보를 과거 초빙하지 않은 바 있다.
도란 추기경은 앞서 “오바마의 참석에 항의하는 우편을 잔뜩 받았다”면서 이날 만찬은 “후보자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애와 정중함, 애국심을 증진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지원하는 저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AESMD는 천주교도로서는 처음으로 대선 후보로 나선 알프레드 스미스 뉴욕 전 주지사를 기리기 위한 행사다. 1928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스미스 주지사는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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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