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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한다, 고로 꿈틀거린다 워커힐 소믈리에 이제훈의 혀

[기타] | 발행시간: 2013.06.23일 13:05

[한겨레] [토요판/몸] 대회 직전 4개월 동안 김치·된장·간장 안 먹어

▶ 먹고 마시고 핥고 말하는 이것은 쾌락을 좇습니다. 맛 좋은 것을 내놓으라고 신경질적이기도 하고요. 자기 욕망대로 혀를 놀리는 사람을 보면 무서울 때도 있지요. 그래서 혀는 내 몸 안에 있지만 내 의지대로 조절이 안 되는 신체인 것만 같습니다. 지금 나의 혀는 무엇을 욕망하고 있나요. 쉐라톤 워커힐 호텔의 이제훈 소믈리에에게 혀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에게 혀는 일종의 ‘무기’

예민한 감각 유지하기 위해

술·커피 거의 마시지 않고

대회 직전 4개월 동안엔

김치·된장·간장 안 먹어 

혀의 표면에 오돌토돌 솟은

유두 속 ‘미뢰’가 맛 느껴

성인 혀엔 1만개 미뢰 있는데

미뢰 하단에 있는 신경섬유가

미세포에 맛 전달하는 역할

벌어진 입술 안에서 분홍빛 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사라진다. 말캉한 혀가 훑은 입술은 촉촉하게 생명력을 얻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을 혀 위에 올리고 오물거린다. 혀에 힘을 주자 음식은 긴 어둠 속으로 떨어진다.

물을 마시고 와인을 마시며 섬세하게 맛을 느낀다. 혀뿌리의 깊은 어둠을 뚫고 흘러나오는 소리는 혀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문자가 된다. 맛을 느끼고 말을 하는 혀는 ‘입속의 피부’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사회적 도구’다.

“김치를 안 먹지는 않아요. 미각에는 김치보다 담배가 안 좋지요. 그런데 선배님들이 공통적으로 말씀하시는 점이 40대가 되면 확실히 미각의 예민함이 줄어든다는 거예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의 미각이 제일 좋지요. 하하.”

블라인드 테이스팅 하면 맛이 외워져

17일 오후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만난 와인·워터 소믈리에 이제훈(43·고객만족(CS)팀 지배인)씨의 혀가 빠르게 움직였다. 이씨는 와인소믈리에이자 한국워터소믈리에협회 회장이다. 1995년 호텔에 입사한 그는 1999년 와인소믈리에 일을 시작해 2006년 프랑스 와인소믈리에 인증서를 취득했다. 지난해에는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주는 워터소믈리에 자격증을 받았다.

국내외 소믈리에 대회 경험도 여러 번이다. 2009년 세계소믈리에협회가 주최하는 제1회 ‘아시아·오세아니아 소믈리에 대회’에서 일본인 3명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14년차 와인소믈리에이자 최근 워터소믈리에로 영역을 확장하기까지 음료의 맛과 정보, 이를 주관하는 혀의 감각 등이 이씨의 입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무색무취의 물맛을 어떻게 구분하는지부터 물었다.

“탄산수는 쉽게 구별하지만 일반 물은 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지요. 가장 구분하기 어려운 것은 물의 구조감이에요. 첫 느낌이 중요해서 바로 알아채지 못하면 알 수가 없죠. 미네랄이 많이 들어 있는 외국 물은 무거운 편이고 국내 용천수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라, 브랜드까지는 몰라도 외국 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어요. 구조감은 혀의 양쪽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워터소믈리에는 물을 마시면서 물의 투명도, 청량감, 신맛, 짠맛, 구조감, 부드러움, 균형감, 지속성을 평가한다. 맛을 본다, 맛을 느낀다는 것은 사실 혀만의 독립적 감각은 아니다. 맛은 미각뿐 아니라 혀의 온도 감각과 촉각 그리고 후각과도 관계가 있다. 물맛은 체온보다 20도 이상 낮은 12도에서 가장 좋고 시원하다고 느껴진다. 이씨가 혀와 코, 뇌를 가리키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몇 번 하다 보면 맛이 외워져요. 제일 먼저 닿는 것은 혀일지 모르지만 그보다 먼저 코의 비강(콧구멍~목젖의 빈 공간)이 향을 맡은 후 뇌가 무슨 맛인지 인지하는 거죠. 전에 맛을 본 적이 있는 음료는 뇌에서 기억하고 있는 맛과 향을 먼저 혀에게 알려주는 것 같고요. 뇌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첫 감각들, 예를 들어 밸런스, 바디감, 구조감, 산도 같은 것은 순간적 감각으로 받아들인 후 표현을 하는 거죠.”

사람의 혀마다 미각을 느끼는 ‘맛봉오리’가 있다. 혀의 표면에 오돌토돌하게 솟은 혀 유두 속에 존재하는 ‘미뢰’라는 감각기관에서 맛을 느낀다. 미뢰 속에 20~30개의 ‘미세포’가 있고 미뢰의 위쪽 표면에는 ‘미공’이라는 구멍이 나 있다. 미세포에 난 털 모양의 돌기는 미공을 통해 혀 표면에 나와 있고 이 돌기가 미각을 자극하는 물질에 처음으로 반응한다. 성인의 혀에는 약 1만개의 미뢰가 있는데, 미뢰 하단에 신경섬유가 들어가 있어 미세포에 맛을 전달한다.

순수한 미각에서는 혀의 끝부분이 단맛, 앞부분이 짠맛, 옆부분이 신맛, 뒷부분이 짠맛을 느낀다지만 이는 대략적 경계일 뿐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다. 흔히 맛이라고 생각하는 포도맛이나 사과맛 같은 향은 코의 후각상피세포에서 느끼는 냄새다. 뇌에서 비강 쪽으로 나온 뉴런 끝에 달린 섬모에 냄새 수용기가 있다. 이 냄새수용기는 냄새들을 기억해두었다가 비슷한 냄새가 나면 기억을 되살려 냄새를 구분한다. 매운맛과 떫은맛 등은 사실 촉각이다. 맛 수용기의 자극에 대한 반응도 동물에 따라 차이가 있다. 고양이는 설탕맛을 느끼지 못한다. 사람과 원숭이만이 설탕이나 사카린 맛에 반응한다.

누군가의 먹는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미각을 날카롭게 관리해야 하는 소믈리에에게 혀는 일종의 ‘무기’다. 입을 연 이제훈씨가 혀를 내밀고 위아래, 앞뒤를 가리키며 자신의 무기를 관리하는 법을 알려줬다.

“보통 대회가 10월에 있어요. 대회 시작 전 보통 넉달 정도 김치, 된장, 간장을 먹지 않아요. 안 그러면 미각을 단련시킬 방법이 없어요. 그때는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테이스팅만 줄곧 합니다. 아침·점심으로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식빵이나 바게트빵만 먹어요.”

맛보는 것만큼 중요한 ‘소통의 기술’

혀는 기억한다.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떤 음료를 맛본 후 본래의 미각으로 복귀하는 데 10~15분이 걸린다. 자극적일수록 오래 기억된다. 이씨는 예민한 혀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술과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 정 술이 고플 때는 쉬는 전날 밤 혼자 세계맥주 집에서 병맥주 두병만 놓고 딱 그만큼의 맛만 ‘즐기다’ 자리를 떠난다. 오징어처럼 치아나 입천장이 상할 수 있는 질긴 안주는 ‘사절’이다.

혀는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체다. 몸이 아프거나 호르몬 농도가 변하면 ‘예민한’ 미각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잠이 들 때 가장 먼저 잠드는 감각이 미각이다. 오감 중에 가장 빠르다. 어떤 여성 소믈리에는 대회 기간과 생리주기가 겹치면 미각이 둔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씨 역시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하루 한두시간씩 조깅하고 과로하는 일을 삼간다. 뜨거운 음식은 되도록 먹지 않고 가급적 음식은 차게 해서 먹는다. 먹고 핥고 마시는 ‘쾌락’의 감각기관인 혀를 관리하는 방법은 의외로 금욕적이다. 쾌락을 멀리해야 가장 예민하게 쾌락할 수 있다.

혀는 말과 상관관계를 맺는다. 소믈리에의 또다른 특징은 ‘말’이다. 국내 2세대 와인소믈리에로 국제대회를 꾸준히 나가는 이씨는 맛을 감별하는 소믈리에에게 맛을 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소통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비즈니스하는 혀’였다.

“최고의 소믈리에의 기준이 미각만이 전부는 아니에요. 와인서비스하는 자세를 전반적으로 봐요. 말투랑 화법, 표정과 손짓이나 발짓,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이 최고의 소믈리에를 뽑는 기준 중 하나죠. 소믈리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에 매우 좋은 직업이에요. 나는 와인과 물에 대해 강의를 하고 모임에 나가게 되면서 각계각층의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데 매력을 느꼈어요. 소믈리에들에게 말하라고 시키면 누구한테도 지진 않을 거예요. 하하.”

눈에 보이지 않는 맛과 향을 언어로 옮겨 소통하기란 개인의 학습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혀가 느끼는 매우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감각을 객관의 영역인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혀가 예민해도 말로 예민함을 담지 못하면 소믈리에의 혀는 평가받지 못한다.

“미각과 후각은 모두 선천적 자질과 후천적 노력의 비율이 7 대 3으로 결정됩니다. 와인소믈리에 국제대회를 나가 보면 외국 사람들은 향을 표현하는 데 우리보다 풍부한 점이 있어요. 와인이 외국 술이어서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에 향을 표현하는 단어가 적어서죠. 보라색 과일에서 향이 많이 나는데 체리나 베리 같은 외국 과일에 보라색 과일이 많거든요. 이를테면 아몬드향이라고 하나로 부르지 않고 참기름과 들기름향으로 부르는 것을 협회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국립국어원 누리집에서 표준국어대사전으로 ‘향’을 검색해봤다. 농향, 담향, 토향 등 향기롭다는 단어는 여럿이지만, 어떤 향기가 있는지는 쉽게 검색되지 않았다.

소믈리에는 맛뿐 아니라 향을 그려내는 사람인 만큼 말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알아야 한다. 민간자격증인 워터소믈리에의 교육과정을 도입해 운영중인 한국수자원공사의 먹는물 평가팀 김선주 차장이 말했다.

“맛이라는 것은 주관적이잖아요. 고급 와인이나 비싼 물이라도 누구나 맛이 있고 없다는 기준은 다를 수 있어요. 구조감요? 물을 마셨을 때 단단하다는 느낌…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요? 스트롱하고 하드하다는 느낌? 여름철 조류가 발생해 약품이 많이 들어간 수돗물은 텁텁한 느낌이 난다고 하죠? 부드러움은 공기처럼 맑은 느낌이랄까… 소믈리에 대회는 맛의 차이를 구분하고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지를 측정하는 것이기도 하죠.”

빨간 점막만으로 이루어진 혀는 어떤 감각기관보다 육체를 닮았다. 날름거리는 남의 혀를 보는 것은 관능적이다. 나의 의지를 담아 열고 오므리고 움직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 감각기관을 두고 조경란은 소설 <혀>에서 “어떤 대상에게 강렬하게 끌렸다는 것,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그것을 꿀꺽 삼키고 싶다는 본능을 일깨워준다”고 했다. 그래서 혀는 욕망을 따라 말하고 먹고 마시고 핥고 사랑한다. 고종석은 그의 책 <어루만지다>에서 “언어로서의 혀놀림이 들려주기 위한 것이라면, 행위로서의 혀놀림은 보여주거나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사랑의 행위를 지휘하는 혀놀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음식 먹기 전엔 물을 마시지 말라

노란빛이 굴절하는 투명한 액체, 쨍그랑하고 부딪히는 유리잔의 맑은 소리. 수정같이 맑은 물의 흔들림에 신경을 집중하자 온몸의 감각이 확장됐다. 이제훈 소믈리에가 시음하기 위해 잔에 물을 따랐다. 눈을 감는다고 맛이 잘 느껴지는 것은 아니라면서 이씨가 눈을 지그시 떴다. 입술을 벌려 물을 마실 때 ‘호르륵…호르륵…’ 소리가 났다. 입안에 든 음료를 혀 안에 담았다가 다시 뱉는 느낌이었다. 이씨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며 음료의 맛을 보는 동작을 십(sip)한다고 표현했다. 맛을 보는 이씨는 물을 움켜쥐고 몇 번이고 혀를 움직였다. 그의 몸에서 혀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소믈리에에게 혀란 무엇인가요?”

“내가 가진 신체의 모든 오감을 일깨워주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나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은 혀예요. 남들의 손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음료가 주는 오감을 잡아내서 맛과 지식을 전달하는 게 제 일이지요. 그만큼 혀를 아낍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워터소믈리에로서 음식을 먹기 전에 물을 마시지 말 것을 권유했다. 물을 마시면 침샘이 마르고 침이 나오지 않아 음식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정 목이 마르다면 침이 나오는 탄산수 위주로 조금 마시거나 일단 음식을 한입 떠먹은 뒤 물을 마시라고 했다. 탄산수는 입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비린 맛을 없애주고 침샘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앞으로 와인과 물 외에 다른 음료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전했다. 혀는 나의 욕망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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