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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춘 추모글. 7월의 슬픔, 7월의 그리움/리홍규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3.07.22일 12:46
저자: 리홍규

  7월은 태양이 가장 뜨겁게 작렬하는 계절이요 수풀이 가장 왕성하게 절정으로 치닫는 계절이다. 7월이란 그래서 쇠락의 래일이 바라보이는 계절이기도 하다. 절정의 순간순간에 쇠락의 그림자가 어딘가에서 한뼘한뼘 따라나서는 계절, 7월은그래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처절한 그래서 가장 슬픈 계절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계절에 우리는 한춘선생을 떠나보냈다. 아니 선생께서 이런 계절을 선택해서 우리를 떠나셨는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에 병마와 조우하신후 50성상 시인의 삶을 살아오신 선생답게 생명의 마감을 이렇듯 아름답고처절한 계절로 선택해 장식했는지도 모른다.

  죽음이 슬픈것은 그것이 다시 살아돌아올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더 슬픈 죽음의 다른 한 의미를 망각할 때가 많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란 곧 생명 창조의 단절을 의미한다는 그 점이다. 무릇 생명이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울수 있고 의미가 있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생명의 연장만이 아닌 생명의 창조에서 우리는 삶의 보람과 의미를 한결 더 절실하게 느낄수 있지 않은가. 선생의 떠남이 우리의 가슴을 더더욱 저리게 하는것은 바로 선생의 시창작,선생의 문학비평, 선생의 후학에 대한 사랑과 가르침...... 이 모든것이 바로 7월의 수풀처럼 절정으로 치닫으며 생명 창조의 찬가를 부르는 가운데 문득 단절되였기때문이다.

  그러한 생명 창조는 칠순이라는 선생의 년세와 무관한것이였다. 그만큼 선생은 시인으로서 치열한 인생을 살아오셨고 그 치열함속에서 완성돼온 선생의 문학세계와 문학사상은 곧 그이를 우리 문단의 거목으로 우뚝 서도록 만든것이였다. 그처럼 즐겼던 소주와 줄담배만큼이나 문학에 심취하며 살아오신 선생은 온 생명을 문학과 문학을 위한 일과 사람에게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방문단의 거의 모든 시인, 작가들이 선생의 관심과 가르침을 받았고 그들의 성장과정에 알게 모르게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또한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만큼 선생은 지난세기 80년대부터 북방문단의 기수와 도사로서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문학인생을 살아오셨던 것이다.

  그러한 문학인생은 또한 선생을 북방문단뿐이 아닌 전반 중국 조선족문단에서도 그이만이 이룩할 수 있는 업적을 쌓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80년대 중반부터 선생은 우리 문단에서 가장 먼저 <시가관념갱신>을 주장하며 시가 리론과 창작을 적극 실천해오셨다. 그것은 단지 현대시창작방식을 주장해온 것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건국이후부터 이른바 <문화대혁명>을 경과하면서 굳어지고 경직된 우리의 문학환경에 대한 도전이였고 정치와 전통관념의 예속에서 리탈하려는 과감한 시도였다고 해야 할것이다. 우리문단의 관념전변과 사상해방이 그로부터 시작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은 이미 20여년 흘러 지금 우리문단은 창작관념이나 방식에서 전례없는 다원화 국면이 조성되고있는데 여기에는 선생의 당초 관념갱신 주장과 실천에서 그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것이다.

  우리문단에서 애주와 달변 그리고 소탈함과 박식으로 유명하셨던 선생은 어딜 가나 주변에 문우들이 모여들어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문학과 인생을 담론하곤 하셨다. 그러나 그이의 시를 진정 리해하는 이 몇이였고 그이의 작품세계에 깊숙이 들어간 이 몇이였던가. 우리의 보잘것 없는 시와 수필 그리고 소설에 대해 선생은 하나에서 열까지 그토록 자세하고도 심각하게 그 우렬과 높고 낮음을 가려주셨지만 그이의 문학세계에 대해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습득하고 있었던가. 그래서 선생은 어쩌면 고독하셨는지도 모른다.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독보적인 문학인생을 살으시며 그토록 높은 금자탑을 쌓으셨기에 그만큼 그이는 정신의 고독함을 감내하시다가 가셨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늦게나마 알게 된 우리의 가슴은 그래서 더더욱 슬퍼지는것만 같다. 이제 우리는 빈말이 아닌 실제행동으로 그의 문학사상을 리해하고 거기서 창작과 사상의 양분을 길이길이 섭취해야 할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를 사랑하고 가르치셨던 선생에 대한 가장 큰 보답인지도 모른다.

  7월 19일 오전, 선생은 몇줌의 하얀 뼈를 남기시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골회함을 받쳐든 선생의 아들 대용이와 딸 미금이를 따라 납골당까지 갔다. 하늘나라에도 주소가 있다면 납골당 번호가 바로 그 문패일것 같아 그걸 알아두기 위해서였다. 혹시 선생이 그리우면 가끔 찾아가뵐수도 있으니까.

  할빈 하평로(哈平路) 납골당 3층 천지(天池)실 997번. <주소없는 편지>를 한권의 시집으로 묶어내셨던 선생이 남기신 마지막 주소인셈이다. 주소는 있으되 편지를 보낼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그리움만은 항상 보낼수 있는 곳이 아니겠는가.

201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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