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협박 … 2차 피해 시한폭탄
지난해 결혼한 A씨(24·여)의 악몽은 올 8월 시작됐다. 남편은 심각한 표정으로 A씨를 불렀다. 친구로부터 “제수씨가 찍힌 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A씨는 3년 전 교제했던 B씨(27)가 불현듯 떠올랐다. B씨는 A씨와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동영상을 찍자고 졸랐다. 그때마다 거절했던 A씨는 B씨가 몰래 동영상을 찍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A씨는 B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남편과 올 초 태어난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졌다.
몰래 남긴 '사랑의 기록'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기도 한다. '보복성 몰래카메라(몰카) 포르노'는 여성 몰래 유포되거나 협박용으로 이용되는 성관계 동영상이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협박이나 인터넷 등에 유포된 뒤에야 몰카의 존재를 알아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1월부터 올 6월까지 진행한 몰카 피해상담 26건 중 피해자가 촬영 사실을 모르고 있던 경우가 12건(46.2%)에 달했다.
여성민우회는 지난 5~8월 주요 파일공유 사이트를 감시해 몰카 158건을 찾아내 삭제했다. 하지만 일부 사이트만을 대상으로 한 데다 뒤늦게 삭제된 경우가 많아 유포된 영상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보긴 어렵다. 파일명에 여성의 신상정보가 담기거나 게시물에 “어디 사는 누구다”는 등의 댓글이 달리는 등 2차 피해 가능성도 있다.
몰카 피해를 알더라도 신고할 용기를 내긴 쉽지 않다. 민우회에 접수된 피해상담 26건 가운데 고소가 진행 중인 사례는 2건(7.7%)에 불과했다. 몰카 협박은 현행법상 협박죄로 취급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는다.
해외에선 몰카 범죄를 강력히 처벌한다.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원은 합의하에 찍은 영상이라도 심리적 고통을 줄 목적으로 배포한 경우 징역형에 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플로리다주 법원은 두 번 이상 몰카를 찍다 적발되면 15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윤지영 박사는 “국내에도 법 규정은 있지만 보복성 몰카 포르노에 대해 협박죄를 적용해 강력히 처벌한 사례는 드물다 ”며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몰카 역시 중대한 성폭력 범죄의 일종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손국희·장혁진 기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