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1만5000명 시대… 로스쿨 졸업생까지 쏟아져 경쟁 치열]
사건 수임 목록 갖고 다니는 '법조 보따리'에게 사건 소개받고
사무국장이 어린 변호사 고용… 법률사무소 불법 운영하기도
"서초동에 '법조 보따리'에게 사건을 소개받는 '개변휴업(開辯休業) 변호사'가 엄청 많아요."
변호사 업계의 불황에 대해 묻자 대검 중수부 수사관 출신 법무사 A씨가 한 말이다.
'법조 보따리'란 보따리 상인처럼 각종 민·형사사건의 수임 목록을 갖고 다니면서 변호사들에게 곶감 빼먹듯 팔아넘기는 브로커를 부르는 말이다. 개변휴업 변호사는 말 그대로 변호사 개업은 했지만 사건이 없어서 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인 '백수 변호사'를 뜻한다. A씨는 "'법률사무소 사무국장'이란 직함으로 활동하면서 사실상 대표인 사무국장이 오갈 데 없는 어린 변호사들을 고용해 불법 운영하는 곳도 많다"며 "능력과 관계없이 '소송 수행'만 하면 되는 사건을 수십건씩 긁어모으는 생계형 변호사나 기획 소송을 남발하는 변호사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변호사 1만5000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변호사 업계의 불황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2000년 4200명 선이었던 전국 변호사는 2010년 1만명을 돌파했고, 작년부터 약 1500명씩 로스쿨 졸업생들이 쏟아지면서 밥그릇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서울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이달 현재 매달 5만원씩인 회비(會費)를 1년 이상 내지 못한 변호사는 전체 회원 9724명 중 120명(1억1200만원)에 이른다. 2011년에는 92명, 2010년에는 77명이었는데 꾸준히 늘고 있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변호사 경력에 치명적일 수도 있는 미납 회원이 느는 것은 변호사 업계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월급'이 보장되는 국선변호사 채용도 점점 바늘구멍으로 변하고 있다. 법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국선전담변호사를 44명 채용하는 데 역대 최고인 397명이 몰려 평균 9대1 경쟁률을 기록했다. 2007~2008년에는 50명 선이었던 지원자 수가 2009년 272명, 2010~2011년 280명 선으로 늘었다가 작년 388명에서 올해 최대 인원이 몰렸다.
변호사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탈선 변호사도 늘고 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징계 변호사의 비리 유형이 과거에는 변호사법 위반이 많았다면 최근 몇년 동안 사기·횡령 등 변호사 직무와 무관하게 경제사범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작년 대한변협이 징계한 변호사 21명 중 12명이 금품 비리에 연루됐다.
인도네시아 왕족의 자금 투자를 대리하고 있다고 속여 13억원을 가로채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변호사, 구치소 마약범에게 몰래 담배를 넣어주다 걸린 변호사 등 변호사들의 범죄 뉴스를 접하는 경우도 흔해졌다.
[한경진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