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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의 경험, 박근태 중국전문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2.03.21일 10:56
(흑룡강신문=하얼빈) 1984년 1월, 새해가 밝았지만 30세의 박근태 대리는 그다지 흥이 나지 않았다. 종합상사인 대우실업(대우인터내셔널의 전신)에 입사해 4년을 일하면서 미국근무를 세번이나 신청했지만 번번이 탈락해서였다. 보통 두 번 연속 미역국을 먹는 경우는 있어도 세번씩이나 탈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그의 실적은 사회초년병이었음에도 빼어났다. 풀이 죽어 있던 그에게 당시 담당부장이 “홍콩에 주재원 자리가 하나 났는데 홍콩에서 근무해 볼 생각은 없는가”라고 물어왔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박근태 대리는 그 자리에서 “홍콩이라도 가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 해 3월16일 홍콩 카이탁공항(지금은 폐쇄됐음)행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오후 3시쯤 카이탁공항을 나서자 덥고 습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혔다. 숙소인 프라마호텔로 가는 택시안에서 바라보는 홍콩의 거리는 회색건물 투성이였으며 가는 곳마다 홍콩 특유의 냄새가 진동했다. 여장을 풀고 그날 저녁 회사 선배가 챙겨준 조촐한 저녁식사에서 그가 맞닥뜨린 것은 광둥(廣東)식 비둘기요리였다. 한 입 먹고는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았다. 25년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중국통 비즈니스맨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CJ 중국본사 박근태 대표가 맞은 중국에서의 첫날이었다.

  ◆청춘을 중국사업에 바치다

  당시 홍콩은 중국 본토 국유기업들의 무역 전진기지였다. 박근태 대표의 임무는 중국 기업들로부터 오더를 따내 한국 제조업체들의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었다. 천성이 부지런한 그는 8시에 출근해서 밤 11시 넘어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청년 박근태에게 주말이란 아예 없었다. 어떤 날은 조찬미팅을 끝내고 오전에 3건의 바이어미팅을 한 후 점심미팅을 하고 사무실로 들어와 본국과 바삐 연락을 해 물량과 가격을 조정한 후 오후에 4건의 바이어미팅을 하고 저녁 술자리 미팅까지 해야 했다.

  홍콩에 온지 1년이 지나자 영어에만 의지하는 소통이 불편해졌다. 개인교사를 구해 일주일에 3회 3시간씩 6개월동안 베이징 보통화를 배웠다. 박 대표는 “당시 배운 중국어실력으로 아직도 중국인들과 소통하고, 중국 고위관료들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한국손님들에게 통역을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어에 어느정도 자신감이 생기자 그는 직접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영업에 뛰어들었다. 중국 최대 금속ㆍ광물업체인 우쾅(五鑛)그룹 민메탈 홍콩법인으로부터 오더를 따낸 일화는 아직도 업계에 전설로 남아있다.

  1986년 봄 그는 민메탈의 홍콩법인 회장실을 아침 일찍 찾아갔다. 특유의 붙임성으로 건물경비들은 물론 회장실 비서들과 안면을 터놓은 후 새벽같이 회장실 앞 쇼파에 앉아있다가 민메탈의 회장이 오면 ‘자오상하오(早上好, 중국의 아침인사)’라며 큰소리로 꾸벅 인사하고 몇마디를 건네고 나오는 식이었다. 문전박대도 당하고, 회장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일주일에 세번씩 민메탈 회장실을 꾸준히 찾았다. 6개월이 지나자 민메탈의 회장이 박대표를 따로 불렀다. 캔의 원료인 틴플레이트 50t을 한국으로부터 구매할테니 브라질산 가격에 맞춰달라는 것이었다. 이익이 얼마 남지 않을 계약이었지만 박대표는 제조상을 설득해 수출계약을 성사시켰다. 이후 민메탈의 회장은 박대표를 신임하게 됐고 수차례의 대형계약이 박대표의 손을 거쳐 체결되게 됐다.

  ◆눈부신 나날들

  1989년 6월 5일, 그는 홍콩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1992년 한중수교가 체결됐고 중국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박대표의 중국 네트워크와 중국 경험의 가치 역시 급등하게 됐다. 그는 수교 이듬해인 1993년 3월 ㈜대우 베이징지사 철강부 부장으로 베이징 땅을 밟는다. 이후 그는 현재까지 줄곧 중국 곳곳을 누비며 한국 수출전선의 최일선에 서게 된다.

  그가 홍콩에서 맺은 중국 본토 인맥들은 그의 막강한 자산이었다. 특히 중국석유물자공사와의 인연은 그에게 무려 3000만달러짜리 계약의 짜릿함을 맛보게 했다. 2001년 석유물자공사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상하이까지 운송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서기동수,西氣東輸)에 소요될 강관 원재재 입찰을 내걸었다. 당시 이사직급으로 철강팀을 지휘하고 있던 박근태 대표는 입찰정보를 누구보다 먼저 접하게 됐으며 입찰조건이나 상세내용에 대해서도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무려 3000만달러에 달하는 계약이었기에 그는 업계에서 유명세를 탔다. 게다가 당시 굵직한 공급계약은 박 대표의 독차지였다. 경쟁사들의 서울본사는 각자의 베이징사무소에 “박근태라는 인물이 어떻게 하길래 대형 계약을 싹쓸이 하는지 리포트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정도였다. 종합상사 업계의 스타였던 박 대표는 2006년 CJ그룹 중국본사 대표이사로 영입된다.

  ◆CJ그룹 중국사업의 선장

  CJ그룹은 그룹의 4대 핵심사업인 식품외식, 생명공학, 유통(홈쇼핑/물류), E&M(엔터테인먼트)을 모두 중국에 진출시켜 놓은 상태다. 2005년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중국사업을 시작한 CJ는 2006년 박근태 대표를 선장으로 맞이하면서 양적 질적 성장을 꾀하게 됐다. 2007년 32억위안이었던 중국내 매출액은 2011년 104억위안(한화 약 1조9000억원)을 기록해 3배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현재 CJ는 중국내에 41개 법인, 19개 공장, 20개 사무소에 걸쳐 8400명의 현지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올해에는 라이신과 헥산 공장 등 생명공학 분야에서의 대대적인 증설이 예정돼 있으며, CGV는 중국시장 진출도 가속을 낸다는 방침이다. 현재 9개 있는 중국내 사료공장도 매년 2~3개 이상씩 확장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박 대표는 “CJ가 제2의 창업을 선언한 중국에서 사업 확대에 전력을 다할 각오”라며 “건강함과 즐거움, 그리고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CJ 문화의 요체가 중국에도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꿈”이라고 힘을 주어 말했다. /아주경제

  ◆박근태 대표 주요약력 ▲1954년 출생 ▲중앙고등학교 ▲연세대 역사학과 ▲1980년 대우실업 입사 ▲1984년 대우 홍콩지사 과장 ▲1993년 대우 베이징지사 부장 ▲1996년 대우 광저우지사 대표 ▲1998년 대우인터내셔날 상하이(上海)지사 대표 ▲2004년 대우 중국유한회사 총재 ▲2006년 CJ그룹 중국본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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