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 허창렬
어느 하늘아래 서러운 별이였던지 이제는 기억에조차 아리숭하다
흔들리는 눈섭, 흔들리는 가슴ㅡ
흔들리는 바람속에서도 나의 손발은 항상 너무 차거웠다
캄캄한 밤하늘. 눈 내린 보리밭, 마음이 가난한 돌멩이
새벽이 휘파람 불며 끌고 오는 저 긴 기적소리에도
어김없이 풀 가위질해대던 여리고 아팠던 나의 잔등
똥별이 지핀 모닥불에 눈물로 꽁꽁 언 몸을 녹여가면서도
그렇게 나의 별은 항상 손발이 가슴보다 더욱 따뜻했다.
지킬수 없는 약속따윈 이제 와서 진리조차 아니기에
용서라기보다는 때늦은 관용이나마 내 마지막 자존이라 굳게 믿고
그렇게 억새풀처럼 꿋꿋이 살아온 삶
오늘은 살아서 죽어가야 할 내 인생의 마지막 자서전을 다시 쓰면서
나는 다시 필을 씹는다 이제와서
찢어진 가슴 깁는다는건 녀와가 하늘을 깁기보다도
더욱 어려운 일이기에
사월은 마침내 손발이 아닌 가슴을 먼저 덥힌다
가슴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별 하나
허이ㅡ허이ㅡ 쾌나 칭칭ㅡ어절씨구ㅡ
장구치며 탈춤 추며 노래 부르며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봄 1
다 주기로 했다
아낌없이 내 모든것을 이제는 죄다 돌려주기로 했다
후회마저 없다
아무런 방황조차 없다
통통 젖살이 오른 풀잎들이
담장아래 입술을 오무르고 실실 웃는다
천만개의 해살을 쪼개여 금빛으로 만든
큼직한 나막신을 신고
옷자락 너풀거리며 바람이 다시 산에 오른다
벌판에서 깔깔대며 뛰여다닌다
페허의 뜰밖에는 냉큼 꽃씨도 쥐여 뿌린다
물주전자속의 안타까운 시간들이
지친 모습으로 긴 머리채 감으면서
창턱의 화분우에 두 마리의 가재미 되여 나란히 눕는다
갓 피여난 월계화의 향기를 개구리는
천서로 두 손에 언뜻 받아쥐고서도 아직 읽을줄조차 모른다
잘 여문 주름살이
글이 없는 세상을 바위우에 조심스레 쏟아붓는다
봄 2
드디여 깨여난다
하나둘씩 기지개 켜며 살풋이 눈을 뜬다
잘 썪어 문드러진 아름다운 향기속에서
지렁이며 개구리며 제비들이 제각기
따로따로 손발을 움직여본다
너는 부처님이 고행(苦行)으로 흘리신 무수한 땀방울
너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묶여 흘리신 빨간 피방울
개나리가 베토벤의 제 3악장을 신나게 연주한다
봉성화가 아리랑에 박자맞춰 덩실덩실 탈춤을 춘다
오늘도 물은 풀잎에 손 베여도 상처가 없다
갈대
바람을 읽고 다시금 꿋꿋이 일어선다
하늘에 서슴없이 날리는 창백한 붓끝
웅덩이에 고인 한방울 물에도 곱게 또 인사를 한다
낫 놓고 기억자 , 아무것도 모르는 흰 노루와 놀란 사슴떼
헐레벌떡 뛰여가는 내 숨결의 크나 큰 폭포소리여
추호의 망설임도 모르는 대자연의 거대한 장편서사시여
언제나 장님처럼 나만 믿고 따르는
잃어버린 옛사랑의 얼룩진 흰 손수건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