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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마중물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4.09.25일 08:52
마중물이란 메마른 펌프에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먼저 붓는 한바가지의 물을 말한다. 지하에 누워있던 엄청난 물을 퍼올리기 위해 마중을 나간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벌겋게 녹 쓴 물이 올라오지만 점점 힘을 더하면 맑은 지하수가 펑펑 솟아오른다.

땅속 깊은 물을 끌어올리고 자신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지만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소해주고 생명을 유지시킨다. 이처럼 마중물은 예전에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너무 고마운 존재였다.

감수성이 제일 강했던 사춘기와 청춘시절,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나한테도 이처럼 고마운 《마중물》이 되여주신 스승이 있었다. 바로 소학교 담임이였던 허애순선생님이시다. 자격지심과 아픈 상처로 몸부림치던 나의 등을 밀어주고 한품에 안아주셨던 선생님, 글을 쓰는 이 시각에도 선생님의 사랑에 눈시울이 젖어든다.

그날은 내가 고중을 졸업하기 한해전인 1971년 가을의 어느날이였다. 학교에서 금방 집에 들어서는데 문득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달려가보니 허애순선생님이셨다. 고중을 다니는 나한테 소학교 담임선생님이 찾아오신다는것 자체가 커다란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내가 인사를 건네기 바쁘게 선생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셨다.

《너의 정황을 알아보려고 학교에 찾아갔더니 공부는 잘하는데 입단은 뒤전에 밀어놓고 집에 돌아오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며? 도대체 어찌된거니? 넌 원래 이런 애가 아니였잖니?》

그랬었다. 나는 원래 진취심이 강한 녀자애였다. 학교에서는 소학교를 졸업할 때면 6학년 학생들중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 몇은 공청단에 가입시켰다. 나도 그들처럼 입단하고 중학교에 가고싶었다. 허나 아버지가 《우파》였기에 입단할수가 없었다. 비록 소학교 4학년때 입단신청서를 쓰고 단교육을 받아왔지만 말이다.

《선생님, 저같은 애는 입단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다른 애들과 어울리기 싫어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석탄 주으러 가야기에 그들과 함께 놀 시간이 없습니다.》

말끝을 흐리며 나는 끝내 고개를 숙였다. 이때 선생님은 나의 손을 꼭 잡아주셨다.

《아, 그랬었구나. 그동안 네가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런데 말이다. 부모는 자기가 선택할수 없지만 전도는 저절로 개척할수 있단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너 아버지의 학생이여서 잘 아는데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다. 세상 제일 좋은 선생님이셨지.》

《너네 반에서는 너를 제1회 적극분자로 정했다더구나. 너 원래 우리 반의 코치였잖니? 힘내라. 넌 꼭 해낼수 있을거다. 그날을 기다리겠다.》

그리고는 눈물이 글썽해 서있는 나를 향해 밝게 웃으셨다…

순간 선생님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어제날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개학한지 두달이 넘도록 돈을 내지 못해 교과서 없이 공부하는 나한테 학비를 면제해주시던 일, 추운 겨울 엷은 옷을 입은 내가 가여워 늘 난로옆에 앉혀주시던 일, 동란의 세월에 교수권리마저 박탈당하고 불량배 학생들에게 쫓기웠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보황파》라고 역시 교실에서 쫓겨난 나한테 《좀만 있으면 세월이 좋아질것》이라며 힘을 주시던 선생님, 교원의 티를 조금도 내지 않고 모든 학생들과 잘 어울리면서 자식처럼 사랑해주시던 일… 선생님의 이러한 삶의 자세에서 나는 사랑과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선생님은 지금까지도 나를 잊지 않고계셨구나.》

여기까지 생각하니 온몸에 난류가 흘러드는것 같았다. 그날 선생님의 뒤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꼭 입단하겠다고 속으로 크게 다짐했다. 그후 일년이 지난후 나는 과연 입단했고 《3호 졸업생》이라는 영예를 안고 모교를 떠나 농촌으로 내려가게 되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비록 소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곁을 떠났어도 선생님은 늘 나를 쭉 지켜보고계셨다. 아버지때문에 어려서부터 타격을 받고 제자리에 서지 못하는 내가 불쌍해 늘 마음이 아팠는데 어떤 날에는 잠도 오지 않으셨다고 한다.

하향하기 전날 선생님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다시 내 손을 잡아주시면서 농촌에 가서 꼭 입당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셨다.

《너와 나의 시발점이 지금 같구나. 누가 먼저 입당하나 우리 내기하자.》

그때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귀전에 울린다.

이처럼 내 인생의 《마중물》인 선생님께서 자신심과 용기를 주셨기에 그 힘든 세월에도 나는 무너지려는 자존심을 다시 세우고 뼈를 깎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사회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지며 삶의 목표를 다시 세우고 나름대로 노력할수 있었다. 2년후 입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선생님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셨다.

《너하고 내기를 걸었는데 내가 결국 졌구나. 그런 가정환경에서 입당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니! 진심으로 축하한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무리 스승이라 하지만 험악한 그 세월에 제자에게 이처럼 하기란 얼마나 조련찮은 일인가? 또 선생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였을가? 그래서 선인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리치와 방법은 부모에게서 배우나 더 큰 지혜와 깨달음은 스승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을것이다.

인생은 고해요 희비의 쌍곡선이다. 다시말하면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며 사는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이처럼 우리의 힘든 삶가운데는 어느곳에나 《마중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중물》은 인생의 《통장》이고 《소금》이라고 했으리라. 친구가 삶의 희망을 잃고 방황할 때 《마중물》처럼 다가가 격려와 믿음, 사랑과 친절 그리고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은 얼마나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인가? 이같은 인생을 산다면 참으로 축복된 삶을 살았다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지친 마음의 펌프에 사랑이라는 《마중물》을 부으면 행복이 콸콸 쏟아질것이다. 하기에 우리는 자기의 인생 펌프에 늘 남을 도울수 있는 《마중물》을 남겨두어야 한다. 지난날 그 누구에게 《마중물》이 된적이 있었던가?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된다. 선생님처럼 기꺼이 《마중물》이 되리라. 그리고 슬피 우는자를 따뜻이 껴안아주는 《마중물》로 살아가리라.

/백진숙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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