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시 교외 한 농민부부는 10년전 자식의 공부뒤바라지를 위해 한사람은 한국에 로무일 하러 나가기로 약정하였다. 안해는 한국으로 나가 일하고 남편은 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의 학잡비를 이어대였다.
출국한지 시일이 길어지면서 안해는 점차 바쁘다는 핑게로 드물게 전화를 걸어왔고 또 돈 한푼 보내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문뜩 안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 한국에서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사랑받고 살게 되였습니다. 우리 리혼을 하고 부부간의 인연을 이젠 여기서 끝냅시다.》
남편은 잠간만 기다리라며 말했다. 《가는 사람 막을수는 없지만 아들이 대학입시에서 락방되여 지금 몹시 신경이 예민해있소.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있는중이니 치료비는 좀 보내줘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 성씨를 가진 아들이고 또 학교갈 때까지 키워줬으면 됐지 치료비는 아버지가 감당해야 하는것 아닌가요?!》 하더니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남편은 가슴에 피멍이 들도록 상처를 입었다. 안해에 대한 저주와 원망으로 울화가 치밀었지만 남편은 가까스로 참고견디며 밤늦게까지 아들을 돌보며 지칠대로 지쳤다.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 술로 잠을 청하면서 수십일동안 고뇌에 모대겼다. 밥맛이 떨어졌고 머리가 아파나기 시작하더니 어느날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유일한 보호자였던 아버지가 세상 뜨자 친척 하나 없는 아들은 촌지도부의 도움으로 양로원에 가 생활하게 되였다.
말 못하는 어미닭도 독수리가 머리우를 날아지날 때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병아리들을 한품에 품어안는데 하물며 엄마라는 사람이 아들이 곤경에 빠졌는데 모르쇠를 놓다니. 사람이 짐승만 못하다는 말도 이런 사람을 일러 하는 말이겠다.
부모된이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과 책임마저 뿌리치고 살아간다면 대체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이며 또 뭘 바라고 살아가는가.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기 바란다.
/장명길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