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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인들 가족실종 소식에 귀국행렬… 공항 ‘통곡의 바다’

[기타] | 발행시간: 2015.04.28일 03:05
[동아일보]

[네팔 81년만의 대지진]이유종 특파원 카트만두 가는 길

일요일이었던 26일 오전 출근길에 회사에서 휴대전화로 급히 찾는 전화가 울렸다. “바로 집으로 가서 출국 준비를 해 인천공항으로 가 네팔로 떠나라”는 지시였다.

서둘러 인천공항을 출발할 때만 해도 카트만두에 도착하기까지가 이렇게 험난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정시 출발한 중국 난팡항공 CZ3067편 기내에서 음료와 식사를 건네던 중국인 승무원이 어디에 가느냐고 묻길래 “카트만두”라고 말하자 “지진 난 것을 알고 있느냐. 왜 가느냐”고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대화를 이어 나가기 싫어 “비즈니스 때문”이라고만 짧게 답했다.

경유지인 광저우에 도착한 것은 비행 3시간 만인 현지 시간 오후 5시 40분(한국 시간 오후 6시 40분)이었다. 곧 떠날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일군의 네팔인들 모습이 보였다. 비행기는 예정대로 이륙해 카트만두로 향했다.

비행기 좌석은 총 100여 석 정도로 중단거리 중소형 항공기였다. 승객은 80% 정도 채워졌다. 30명 정도는 중국의 구급단체 블루스카이(Blue Sky Rescue) 대원들로 모두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유럽 등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다른 구호단체 사람들 모습도 보였다. 앞쪽으로 등산객 복장을 한 4명의 중년 한국인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말을 걸지는 못했다.

마침 옆자리에 네팔인들 모습이 보여 말을 걸어 보았다. 다들 어두운 표정이었다. 에미트 타파리아 씨(33)는 “카트만두 건물의 70%가 파괴됐다고 들었다. 중국에서 며칠 동안 머물다 소식을 듣고 놀라서 급히 고향으로 가고 있다. 집과 사무실 등이 모두 파괴됐다. 여진 피해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집 밖에 나와 텐트를 치고 있다고 한다”고 말한 뒤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는 중국에서 가정용품을 수입해 네팔에 파는 수입상이라고 했다.

또 다른 네팔인 케샤브 샤르마 씨(28)는 캐나다 앨버타대 토목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그는 “그나마 공항은 무너지지 않았다니 다행이다. 내가 살던 집도 아직은 괜찮다는 소식을 들었다. 휴가를 얻어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마침 지진이 났다고 들었다. 가족들이 무사한지 몹시 걱정이 된다”고 했다. 한국의 서울과 부산에도 가본 적이 있다는 그의 꿈은 모국 네팔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디 그의 꿈이 이뤄지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드디어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 가까이 왔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대재난이 닥친 현장을 제대로 취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지루한 기다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기장은 공항 관제팀에 “착륙해야 한다”고 계속 말했지만 관제팀은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기장은 1시간 정도를 공항 상공만 빙빙 돌다가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으로 항로를 변경했다. 시계를 보니 한국 시간으로 27일 오전 3시 15분이었다.

이웃한 승객들이 하나둘씩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기자도 눈을 감았다. 1시간가량의 비행 후 다카 공항에 도착해 승무원들에게 착륙하지 못한 이유를 묻자 “전 세계 구호팀을 태운 비행기가 한꺼번에 몰려서 착륙할 수 없었다. 연료가 부족해서 기장이 다른 공항으로 변경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카 공항에 도착해서도 기내에 1시간가량 갇혀 있어야 했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온 사나운 모기떼와 싸우고 출입국심사 등으로 1시간 정도를 더 공항에 체류하다 비행사가 안내해준 다카 시내 사리나 호텔에 투숙했다. 3, 4시간 지난 뒤 다시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탄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는 사이 27일 아침이 밝았다. 휴대전화 문자로 회사와 교신하니 일부 조간신문 기자가 카트만두 현지에서 기사를 썼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해당 기자는 기자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방글라데시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카트만두에 도착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마치 도착한 것처럼 포장된 기사였다. 큰 사건이 터지면 기자가 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얼굴 사진부터 실어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관행을 무심하게 따른 결과로 추정됐다.

현지 시간 27일 오전 10시에 출발한다던 비행기는 네 시간이 지나서도 지상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드디어 오후 2시 비행기가 움직였다. 1시간 반가량 지나 비행기가 착륙 허가를 받기 위해 카트만두 상공을 순회하는 동안 멀리서 부서진 집들이 보였다. 비행기는 쉽게 내리지 못했다. 무려 공항 상공을 3시간이나 맴돈 끝에야 착륙할 수 있었다. 답답한 기내가 마치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 비행기가 지상에 착륙하자 좌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 네팔인은 입국장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고향에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이어 다른 네팔인들도 짐을 찾다가 주저앉아 하나둘씩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공항은 순식간에 장례식장처럼 통곡의 장소로 변해버렸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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