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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은 어떤 술을 마셨을까

[기타] | 발행시간: 2017.02.23일 10:29
얼마 전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가 즐겨 마셨다는 와인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피노누아 품종의 와인이었다. 루이 14세가 즐겼다고 하니, 왠지 화려하고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작 얼마나 맛있는지는 다음으로 넘어간 채 말이다. 이렇게 와인은 맛을 뛰어넘는 유명 인물과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나폴레옹 3세가 즐겼다는 와인,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쓴 토머스 제퍼슨이 사랑한 와인 등 일화와 역사로 전해지는 와인 문화는 맛 이상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해외 경매시장에서 수억 원을 호가하는 가격이 나올 때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에는 특별한 인물이나 역사와 연관된 술은 없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에도 있다. 다만 산업화가 늦어지고 그것에 따른 우리 술의 브랜딩이 늦어져 덜 알려진 것뿐이다.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와 근 현대의 압축성장을 통해 궁중의 전통문화나 수백 년 동안 가양주를 빚어 내려오던 명망 있는 집안이 상당수 사라진 점도 있다.

그런 의미로 화려한 가사 문학을 가졌던 조선의 술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그 중에서도 최고 권력자 왕이 마신 술이 오늘의 주제다.

수라간도 양조장도 아닌 내의원(內醫院)에서 빚던 조선 왕의 술

흔히 술을 빚는 곳은 양조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조장이란 말은 일제강점기 시절 생겨난 말로, 그 전에는 술 빚는 양에 따라 주막이나 현주가로 불렸다. 특히 왕이 있는 궁궐에서는 고려 시대에는 양온서(良醞署), 조선 시대에는 사온서(司醞署)로 불렸으며, 사온서를 관할하는 곳은 내국(內局)이었다. 내국이란 사극에서 친근하게 등장하는 내의원으로 궁중의 의술과 약을 담당하던 곳이었다. 이는 술은 의술을 넣어 아주 소중하게 약처럼 빚어냈다는 뜻으로 지금처럼 벌컥벌컥 마시는 개념과는 다른 모습이다.


녹두누룩 향온곡. 출처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

알코올 해독까지 생각하며 빚은 술, 향온주

그렇다면 내의원 사온서에서는 어떤 술을 빚었을까? 다행히도 현재 이 술을 빚는 무형문화재가 있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9호 박현숙 명인으로 내국에서 빚던 술, ‘향온주(香醞酒)’의 전승자다.

향온주의 어원을 보면 문화적으로 어떤 술인지 알 수 있다. 향기 향(香)에 어질 온(醞)을 쓰며, 술을 관장하던 사온서(司醞署)와 같은 어질 온(醞)을 쓴다. ‘어진 자의 향이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며, 동시에 내국을 거느리고 있는 궁중의 관청이자 술을 빚는다는 의미도 있다. 결국, 어진 자의 향이 있는 궁중의 술이란 뜻이다.

이 술의 가장 큰 특징은 술 발효를 시켜주는 누룩에 녹두를 넣어 같이 발효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문헌에서는 향온곡(香醞麯)이라고 부른다. 녹두를 넣은 이유는 녹두 자체가 피부미용에 좋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며, 무엇보다 해독작용이 뛰어나다. 막걸리와 녹두전을 같이 먹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아침에 먹는 녹두죽은 좋은 해장 요리로도 활용된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이 있는 녹두를 기존 누룩이나 술빚을 때 넣지 않은 이유는 단백질 함량이 많아 조금만 잘못하면 쉰내가 나고 발효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궁궐에서는 손이 더 가는 술을 만들었다는 의미도 된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박현숙 명인의 향온주는 이러한 녹두누룩(향온곡)으로 10번 이상을 발효(덧술)시킨 후, 증류한 술로 알려져 있다. 알코올 도수는 40도 전후로, 고도주라 과음은 금물이지만 맛과 도수를 떠나 녹두로 빚었다는 것만으로도 왕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빚은 술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양평의 연꽃 박물관 세미원에 있는 은솥. 내국감홍로를 증류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출처 세미원

은(銀)으로 증류한 내국감홍로

작자 미상의 구한말 신농유약(神農遺藥)이라는 실학 문헌에는 향온주 외에 궁중에서 빚는 술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술 이름은 ‘내국감홍로(內局甘紅露)’로 1차로 연씨(蓮子)와 찹쌀, 누룩 등을 이용하여 연꽃 술을 빚은 후에, 그 술과 함께 다양한 약재를 넣고 증류하는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은으로 만든 솥을 이용해 증류했다는 것인데, 외국에서는 토기나 동으로 증류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은으로 증류했다는 기록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양평 세미원에서 시연한 내국감홍로. 붉은 빛깔이 인상적이다

퇴계 이황의 수제자 중 한 명인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기대승의 시집 ‘고봉선생속집(高峯先生續集)’을 보면, 내국홍로주(內局紅露酒)란 이름으로 어떤 잔에 술을 마셨는가도 나와 있다. 역시 잔도 증류기의 재질인 은(銀)이다.

한국전통주 연구소 박록담 소장은 은을 사용한 이유는 술의 발효 및 증류할 때 발생할 지도 모르는 독성의 생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은기를 사용했던 것이라 설명한다. 동시에 궁중의 술은 향온곡과 같이 전용 누룩이 있었다는 점에서 예사 술과 다르며, 특히 약을 다루는 전문 어의들의 감독 아래 술 빚기가 이뤄지고 전문기술을 요구되었던 만큼, 이러한 술의 복원과 대중화는 한국 술의 진정한 부활과 명품화, 나아가 세계화와도 맞닿아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내국감홍로와 홍로주와 가장 가까운 형태로 시판되는 제품은 파주의 감홍로와 진도홍주가 있지만 각각의 제조법에는 차이가 있다.


양평 세미원에 있는 조선후기 문헌 신농유약. 출처 세미원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뒤에는 술을 빚던 기관 사온서 터가 남아 있어

그렇다면 술을 빚는 사온서는 현재 어느 위치에 있을까? 현재는 종로구 적선동 정부종합청사 뒤에 터만 남아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사온서는 원래 고려시대부터 양온서란 이름으로 이어지건 전통 있는 기관이었다. 구한말에 폐지되었지만, 사온서란 지역은 그 이후에도 사온섯골이라는 거리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914년 일제강점기 시절에 행정구역이 의도치 않게 바뀌면서 적선동으로 통폐합되고 말았다. 우리 손이 아닌 외세에 의해 행정구역이 바뀐 것에 진한 슬픔과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는 사온서 거리 등의 이름으로 다시 복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약술에 대한 법률도 고민해 볼 때

앞서 설명했듯이 내의원은 의술과 약을 담당하던 곳으로, 왕이 마시는 술을 빚을 때도 약 처럼 심혈을 기울여 빚었다고 해석된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약술과 기존 주류가 구분되어있지 않다. 약술이지만 약을 먹는지, 술을 마시는지 정확하게 구분이 되어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가까운 일본은 양명주(養命酒)란 이름으로 약술을 법률로써 별도로 구분 지어 놨다. 그래서 이러한 약술은 기존의 주류와는 달리 주세도 없고, 미성년자의 음주 금지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약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들도 법률상으로는 음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이 법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미성년자의 음주를 허용하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약으로 쓰이는 술에 대한 문화는 효능을 확실히 문서화하여 별도 법률로 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로 인해 문화적 가치가 있는 술 문화가 전승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문화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라진 궁중의 술 기관 사온서, 그리고 해독작용의 녹두와 독성분을 알 수 있는 은솥으로 증류했다는 조선 왕실의 술 문화. 언젠가 이렇게 빚은 술이 세계적인 경매에서 멋진 가격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보지만 우리가 더욱 이런 문화를 찾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문화도 사라질 수 밖에 없으며, 결국 문화의 발전은 즐기는 자에 의해 발전하기 때문이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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