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과 법적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005930) (1,221,000원▲ 3,000 0.25%)·코오롱인더(120110) (62,600원▼ 2,100 -3.25%)스트리가 미국 법원에서 연이어 편파적인 판정을 받자, ‘미국의 자국 보호주의가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 사법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배심원 제도가 글로벌 기업간의 특허·영업비밀 침해 문제를 다루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법원에서는 배심원이 사실 문제를, 법관이 법률적 문제를 따져 ‘누가 잘못했고,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성이 없는 배심원단이 기술 전문가도 이해하기 힘든 방대한 특허 관련 서류를 단 며칠만에 판단하고, 법정에서 졸고 있는 배심원이 조단위 배상금이 걸린 평결에 개입한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 동네 아저씨가 모여 특허침해 여부 판단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법에서는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1조원이 넘는 손해배상금을 물어야한다는 배심원 평결이 나왔다.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법은 애플 본사에서 불과 10여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배심원단은 대부분 지역 주민들로 구성됐다. 일반적으로 미국 법원에서는 판사가 배심원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 특허침해 사건을 따진다. 그런데 이번 삼성전자·애플 사건의 경우 배심원단은 판사에게 보충 질문 한번 없이 22시간 만에 평결을 내놓았다.
전문가도 가려내기 어려울 정도의 난해한 통신·디자인 특허 문제를 다뤘지만 배심원단은 속전속결로 문제를 처리했다. 배심원단이 IT 문외한인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행동이다.
김동준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는 사실에 기반한 사건일 때는 일반인의 판단이 낫다는 취지에서 배심원 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다”면서 “특허문제의 경우 기술과 법이 섞여 있다보니 법관조차도 판단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삼성전자·애플 건의 경우 일방적으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과연 배심원 제도가 이 사건의 판결에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동네 아저씨가 특허문제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법정서 꾸벅꾸벅 조는 배심원, 어떡하나
미국의 거대 화학기업인 듀폰과 피말리는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코오롱인더스트리 역시 미국 배심원 제도로 피해를 봤다.
지난달 31일(한국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지방법원은 코오롱인더스트리에 대해 ‘헤라크론’의 전 세계 생산·판매 마케팅을 20년간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헤라크론이 듀폰의 아라미드 섬유 제품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이보다 앞선 지난해 9월, 8명의 배심원들이 코오롱에 9억1990만달러(약 1조원)를 배상하라는 평결을 내리면서 이미 예견됐다.
당시 평결에는 가정주부·경비원·운동코치·보험매니저 등 특허 비(非)전문가로 구성된 8명의 배심원들이 참여했다. 당초 9명이었던 배심원단은 1명이 법정에서 자주 졸고, 불성실한 태도로 임했다는 이유로 퇴장당하면서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첨예한 특허 법리공방이 오가는 와중에 평결권을 가진 배심원이 졸고 있었다는 점에서 배심원제가 가진 맹점을 그대로 노출한 셈이다.
이 때문에 최종 평결에는 배심원 8명만이 참여했다. 당시에도 영업비밀침해와 관련된 149개 항목을 비 전문가인 배심원이 평결하는 데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배심원들이 듀폰의 아라미드 공장이 있는 버지니아주 주민들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듀폰 ‘압승’에 가까운 평결은 불공정 시비를 낳았다.
이수완 AIP 특허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특허 쟁점을 설명하고 판단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법정 문화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특히 기술적으로 난해한 IT 분야에서 배심원 제도 적용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일 미국 연방 항소법원이 생산·판매 금지에 대한 코오롱의 ‘집행 정지 긴급 신청’을 받아들여 헤라크론 생산 중단의 위기는 일단 벗어났다. 헤라크론을 다시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집행 정지 긴급 신청은 담보금을 걸고 일정 기간에 한해 판결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으로 법률적 판단과는 별개다.
항소법원이 1심 판결에 오류가 있다고 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코오롱은 듀폰과 항소심에서 다시 한번 치열한 법정공방을 이어나갈 전망이다.
설성인 기자
안석현 기자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