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의 한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는 ㄱ씨는 층간소음 문제로 아래층에 사는 ㄴ씨와 불편하게 지냈다. ㄱ씨는 자신과 가족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낼 수밖에 없는 수준 이상의 소음을 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 불가피한 소음이라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래층 ㄴ씨는 ㄱ씨에게 "시끄럽다"며 자주 항의했다. ㄴ씨는 수시로 ㄱ씨의 집 현관문 근처에서 ㄱ씨를 향해 고함을 지르거나 ㄱ씨 집과 연결된 베란다, 현관문, 배관 등을 두드리며 항의했다. ㄱ씨는 'ㄴ씨가 지나치다'고 판단, 법원에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ㄱ씨가 생각한 방법은 ㄴ씨를 상대로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내는 것이었다. ㄴ씨가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취지였다. ㄱ씨는 ㄴ씨가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위를 구체적인 목록으로 만들어 법원에 제출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김재호 부장판사)는 ㄱ씨가 낸 신청의 일부를 받아들였다고 14일 밝혔다. 법원은 "기록과 심문 전체 취지에 따르면 ㄴ씨가 ㄱ씨의 평온한 생활 및 업무를 방해한 사실이 소명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ㄱ씨가 신청한 요구사항 중 "집과 연결된 베란다와 현관문, 배관을 두드리는 행위와 현관문 근처에서 고함을 질러 위협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제3자를 보내 만나자거나 면담을 요청하는 행위, 30m 이내의 장소에서 ㄱ씨를 응시해 위협하는 행위를 하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은 기각했다. 재판부는 "층간소음의 원인과 정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면담을 요청하거나 연락하는 것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ㄴ씨의 행동에 지나친 제약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웃에 거주하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도 감안했다.
ㄱ씨는 ㄴ씨가 가처분 결정을 어길 경우 200만원씩 내도록 하라는 '간접강제' 결정도 신청했으나 법원은 "ㄱ씨가 가처분 결정을 어길 것이라고 볼만한 개연성이 높지 않다"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앞서 지난 9일에도 비슷한 사건에서 같은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서울 성북구의 한 고층아파트에 사는 ㄷ씨와 ㄹ씨 역시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다 위층에 사는 ㄷ씨가 가처분 소송을 냈다. ㄷ씨 역시 ㄹ씨의 접근을 막아달라는 내용의 가처분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ㄹ씨에게 "ㄷ씨의 집에 들어가는 행위와 ㄷ씨 주거지의 초인종을 누르거나 현관문을 두드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법원의 잇단 결정은 층간소음이 더 큰 문제로 커지기 전에 '가처분'이라는 방법을 통해 불미스러운 사태를 차단하는 효과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층간소음의 경우 주민들끼리 다투다 감정이 격해지면 폭력사건으로 번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2월에는 층간소음으로 아래층 주민이 위층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목숨을 빼앗는 일까지 벌어졌다. 폭력사태 외에도 이웃 간 비방이 심해져 명예훼손 소송과 위자료 청구소송으로 다뤄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처럼 층간소음의 피해를 주장하며 항의하는 행위의 일부만을 문제 삼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결정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 볼 수 있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층간소음의 경우 사회문제로 대두됐지만 대부분 아파트를 상대로 주민들이 집단소송을 내면서 '아파트 하자 문제'의 일부로 제기되거나, 주민들끼리 쌍방폭행과 손해배상 문제로 본안소송에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가처분 결정의 경우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위층 주민이 가처분 신청을 이용해 아래층 주민의 접근을 막았고, 법원도 양측이 이웃이라는 점을 감안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