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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동포 생활체험 수기 ]"불효자의 눈물"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2.03.26일 09:00
(흑룡강신문=하얼빈)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이 아들이 한국에 가서 딱 4년만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와 별장 같은 집을 짓고 어머니를 모시면서 만년을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6년도 봄 고향의 헐망한 초가집에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한국에 가면서 내가 어머니와 한 약속이었다. 아들로서 진심에서 우러나온, 가식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와 4년이 넘도록 나는 어머니와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이란 나라를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황금의 땅으로 알았는데 정작 한국에 발을 들여놓는 이튿날부터 마치 전쟁터에 온 기분이었고 한국에서의 벌이란 하늘의 별따기임을 알게 됐다. 노동강도가 센 노가다 일. 열악한 환경은 그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 와 1년도 채 안 돼 lMF로 경제위기를 겪게 되면서 한국경제가 최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잘 나가던 중소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부도나고 파산은 아니더라도 겨우겨우 연명하는 형편이다보니 전에 86만원이면 인민폐 1만원씩 하던 한화도 180만원에 인민페 1만원에 해당되다보니 한국에서 4년만 벌어 귀향하려던 내 꿈을 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벽돌집을 버젓하게 지어 부모님 모시며 행복한 삶을 살리라는 소박한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나 저제나 하며 1년,2년, 3년 그냥 한국에 머물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열심히 일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이렇게 노력한 보람으로 나는 고향 떠나 14년만인 2009년도 가을에 귀향하게 됐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아득하게 미뤄온 긴긴 세월이었다.

  고향에 돌아온 나는 20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집 문을 나서면 남쪽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동네서 집터가 가장 크고 명당이라는 자리를 골라 120평짜리 2층집을 지었다. 실내도 번화한 연해도시 아파트도 울고 갈 정도로 고급스럽게 장식했다. 그리고는 헐망한 초가집에서 생활하던 82세 고령의 어머니를 모셔왔다. 그제야 14년 동안 한국에서 일하면서 자식으로서 어머니와의 그 약속을 지켜 드리지 못해 낮이나 밤이나 늘 내 마음을 지지 누르던 무거운 돌을 들어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지긋지긋하던 타향살이에 종지부를 찍고 늦게나마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모시며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살겠다던 소망을 이루는 기분이었다.

  사실 나도 기뻤지만 내 귀향으로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행복해 하셨다. 전에 다 찌그려져가는 헐망한 초가집에 살면서 "우리는 언제면 이 초라한 초가집 신세를 면하고 남들처럼 환한 벽돌집에 살곘냐"고 입버릇처럼 말하시던 어머니는 새 집으로 이사를 한 후에는 잠자리에서 깨면 믿기지 않는 듯 마루며 주방 벽을 쓰다듬고 가구를 쓰다듬었다. 그런 어머니의 주름 깊은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실 줄 몰랐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늦게나마 어머니에게 안식처를 마련해 드린 것을 요행으로 생각하며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인생살이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 또한 세상일이라더니 나와 어머니의 이런 행복도 잠시였다. 평소에 성적이 좋아 반에서 늘 앞자리를 차지하고 선생님들도 좋은 대학에 갈거라 장담하던 딸애가 대학입시에서 락방할 줄이야!

  나와 아내의 실망도 컸지만 특히 딸애에게는 충격이 컸다. 좋은 경험을 쌓은 셈 치고 재수를 해 한 번 더 도전해 보자고 권장했지만 딸애는 딸애대로 국내 대학보다는 한국유학을 가겠다고 고집했다. 대학을 마치고 유학을 선택해도 늦지 않다고 설복하려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나와 아내는 거듭 상의한 끝에 딸애 주장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말이 쉽지 어학연수까지 4년 반이란 유학기간의 뒷바라지가 문제였다. 몇 년전에 비해 등록금이 엄청 오른 데다 계속해 오르는 추세니 등록금 한가지만도 만만치 않았다. 비록 14년 동안 한국에서 벌었다지만 집을 짓고 장식하는데 거금을 쓴데다 귀향 후 1년 동안 농사도 짓지 않고 소금 녹이듯 쓰다보니 그렇게 쓴 돈도 적잖았다. 그러니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애 뒷바라지를 한다면 거덜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결국 나는 사랑하는 딸애 뒷바라지를 위해서라도 또 한 번 고향과 어머니를 등지고 타향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됐다. 말 그대로 핍박에 의해 양산에 오르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어머니와 이별하면서 약속을 해야 했다.

  "어머니. 이제 딱 4년만 더 기다려 주세요. 딸애의 한국유학이 끝나는 길로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의 만년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애비야. 내 나이 83인데 이제 살면 4년을 더 살겠느냐. 한국에 가려면 이 어미가 죽은 다음에 가든가 하거라."

  이제 또 떠나야 한다는 말에 어머니는 며칠이고 식사를 전폐하고 눈물을 지으셨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제 어머니가 앉으면 몇 년을 더 앉을 수 있으랴! 그럼에도 나는 마음을 굳히고 한국행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보다도 딸애의 앞날을 선택한 불효자로, 어머니보다 내 삶과 내 가정의 앞날의 영위를 먼저 생각한 욕심 많은 불효자식으로 되고 말았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제 한 몸 불태우는 초불처럼 오직 우리 8남매만을 위해 고생을 낙으로 살아오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만년을 지켜드리지 못하고 그 자그마한 소원도 들어주지 못한 이 불효자식은 오늘도 머나먼 천리타향 에서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머니. 이 불효자식이 고향으로 갈 때까지 부디 몸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글/ 허명훈(흑룡강성 가목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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