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지현 기자] 소박하지만 섬세하고, 조용하지만 뜨겁다. 배우 장나라의 연기 성장이 놀랍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묵직하다.
지난 7일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극본 주찬옥 조진국, 연출 이동윤 김희원)12회에서는 김미영(장나라)이 이건(장혁)의 아이를 유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두 사람은 끝내 이혼을 선택했다.
건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병이 발병됐다는 사실에 아파하며 미영과의 이별을 결심했다. 착한 미영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직감한 건은 의도적으로 차가운 태도를 취했다. 건은 미영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양육권을 포기하겠다"고 냉정히 말했다. 미영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대했던 것.
건이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과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미영은 그를 붙잡고 싶었지만 차마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다. 건 역시 미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지만 유전병을 염려하며 미영을 포기하고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로 사랑하게 됐지만, 엇갈리는 선택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미영 역시 더 이상 건을 붙잡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를 보내는 순간, 미영은 건이 유전병의 증상 중 하나인 기억상실증이 회복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 미영은 도로 위에서 애타게 건의 이름을 부르다 달려오는 차량에 치였고, 아이를 유산하는 불행을 맞았다. 병원에서 눈을 뜬 순간,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영은 오열하다 혼절했다.
장나라는 유산한 여자의 심정을 가슴 절절하게 표현했다. 만신창이 몸으로 정신이 혼미한 순간에도 아이부터 걱정하는 미영의 눈은 절박했다. 아이의 태명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장나라의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장나라는 장혁에 비해 다소 소박한 연기를 보여줬다. 건이라는 인물을 만화적으로 연기하는 장혁 옆에서 조용하게 캐릭터를 표현해 온 것. 장혁의 연기가 설정에 의해 다소 오버스럽게 그려지는 반면, 장나라의 연기는 절제되고 잔잔해 오히려 앙상블을 이뤘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의 에너지에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캐릭터 고유의 색을 유지하는 장나라의 연기가 돋보였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장나라의 연기가 더욱 빛을 발했다.
이별을 통보하는 건을 붙잡고 싶으면서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미영의 착함을 들릴 듯 말 듯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표현한 연기는 탁월했다. 어딘가 주눅이 들어보이는 시선 처리도 장나라의 캐릭터 이해도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준다. 현재 장나라가 '운널사'에서 보여주는 모든 표정과 말투는 타인의 부탁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바보처럼 착한 미영의 모습 그 자체다.
아이를 잃고 오열하는 연기 또한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날은 늘 조용하던 미영이 처음으로 폭발하는 날이었다. 건과 자신을 유일하게 이어줬던 끈인 아이를 보낸 장나라의 연기는 정말 모든 걸 잃은 듯 허탈해 보였다.
방송 초반 장혁의 개성적인 연기가 돋보일 수 있었던 건, 미영의 캐릭터를 끝까지 일관되게 표현한 장나라의 뚝심 때문이다. 어느새 장나라는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내는 좋은 배우가 됐다. '운널사'의 진짜 주역은 장나라다.
김지현 기자 mooa@tvreport.co.kr /사진=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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