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윤동주령전에서 청명맞이 성묘식 개회사를 올리는 김혁회장.
룡정•윤동주연구회와 장백산잡지사에서는 공동으로 세계반파쑈전쟁승리 70주년 ,윤동주 서거 70주기, 청명절을 맞으면서 4월 4일 《시인 윤동주 성묘식》을 치렀다. 이어 윤동주의 정기가 어려있는 룡정 옛터에 연구회 사무실을 앉히고 윤동주시인의 문학정신과 민족정신을 길이 선양할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번 기념행사에는 《장백산》 잡지사 남영전 전임사장, 연변작가협회 최홍일 부주석, 청소년문화진흥회 한석윤사장을 비롯하여 룡정 한락연연구중심, 3.13반일운동기념사업회, 연변서전서숙자문중심, 연변조선문독서사 등 단위와 매체들에서 문인, 학자, 교원 등 40여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시인의 령전에 생화를 올리고 제주를 따랐으며 윤동주의 서시를 비롯한 시편들을 랑송하였다.
참가자일동.
원 장백산잡지사, 길림신문사 전임 사장이며 주필인 중국조선족문단의 저명한 시인 남영전선생은 축사에서 《윤동주의 삶의 길과 그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는 늘 우리들에게 민족시인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이 무엇인지 묻게 하고 그의 시의 정신적인 힘, 예술적인 미는 우리 민족과 더불어 영구할것이다》고 하면서 윤동주의 길이 바로 《우리가 걸어야 할 민족정신의 길, 예술의 길》이라고 하였다.
본 연구회 김혁회장은 《윤동주시인은 민족적 저항시인으로서 강인한 의지와 부드러운 서정을 지닌 시인이며 일제암흑기 식민지 시인으로서의 숙명을 안고 사라져가는 우리 말 우리 글을 붙안고 차디찬 감옥에서 스러져가는 순간까지 민족애를 고취한 전형적인 시인이였다.》고, 《민족사랑은 그의 저항의 원동력이였으며 그의 삶의 궤적이요 지표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어느 특정일에 시인을 떠올리고 그의 시를 읊조리는데만 그칠것이 아니라…고향의 민족시인에 대한 사랑이 일반화, 보편화로 되여 진정 그의 문학정신의 진수를 깨칠 때만이 비로소 민족 사랑을 실천하는 문인으로, 민족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45년 2월 윤동주 장례식을 치른 자택 옛터에 룡정•윤동주연구회 사무실이 섰다.
성묘식에 이어 룡정•윤동주연구회의 사무실 개업식이 있었다. 본 연구회 김혁 회장은 1943년 3월 일본에 류학중이던 윤동주시인이 반일운동활동죄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후꾸오까감옥에 수감된 뒤 의문의 주사를 맞고 1945년 2월 29세 젊은 나이에 옥사를 하였다고 소개를 하면서 《〈영국더기〉에서 치른 윤동주의 장례식이 바로 이 집터에 위치하고 있는바, 윤동주의 이 룡정고택은 명동에서 이사 온 뒤 윤동주일가가 마지막까지 지냈던 곳으로서 윤동주 연구에서 지정학적으로 사뭇 중용한 의미를 가지고있다.》고 사무실지정 경위를 밝혔다.
개업식에서 《장백산》 잡지사 전임사장 남영전선생이 룡정.윤동주 연구회에 《윤동주평전》이 련재되는 《장백산》 잡지를 증정하였다.
남영전시인(가운데)이 연구회 회장단에 《윤동주평전》이 실린 장백산잡지를 증정하고있다.
지난 2014년 9월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 인물전 《윤동주 평전》의 저자인 김혁선생이 문인, 교수, 학자, 교직원들과 함께 발족한 사단법인 《룡정.윤동주 연구회》는 윤동주의 문학정신과 민족정신을 선양하는 일에 앞장서서 윤동주의 탄생 97주년 기념행사, 《항일시인 윤동주 70주기 기념행사》, 윤동주 추모문집 출간과 문화총서 《용두레》 발행 등 행사를 꾸준히 펼쳐왔다.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