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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와 고적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5.05.06일 08:24
작성자: 김혁

  (흑룡강신문=하얼빈) "동방의 명주"- 상하이로 가면 곳곳이 명소일터이지만 상하이의 현란한 밤문화를 향수하려면 꼭 들려야하는 곳이 있다. 바로 "신천지"라고 하는 곳이다.

  상하이의 경물들을 눈뿌리 아프게 발품 팔아가며 찾아보던중 필자는 "신천지"를 찾았다.

  중국의 금융 및 상업 허브이자 "상전벽해"의 대명사인 푸둥과 상하이의 최대 번화거리 난징루와 함께 명소로 손 꼽는곳- 말그대로 새로운 하늘과 땅(新天地)이 열려 있었다.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축양식과 노천카페가 어우러졌고 오래된 건축과 녹음수목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낮에는 옛 상하이의 문화를 간직한 쇼핑가와 레스토랑이, 밤에는 상하이 최고의 밤문화를 즐길수 있는 바와 클럽으로 유명했다.

  사실 상하이에서 필자의 심중을 유난히 사로잡는 한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였다.

  임시정부 유적지는 바로 "신천지" 부근에 위치해 있었다.

  상하이 루완취 마당로 농4호(上海卢湾区马当路306弄4号).

  임시정부 유적지 청사는 "신천지"와는 대조되게 매우 낡고 좁은 도로옆에 위치해 있어서 언뜻 보면 쉽게 지나쳐버릴수도 있을만큼 평범했다. 좁은 골목길 안에 적색벽돌로 건축된 허름한 3층 건물이였다. 건물곁에는 아직도 주민들이 살고있었는데 골목길에는 자전거가 세워져 있고 베란다에는 빨아 넌 옷가지들이 나붓기고 있었다. 일반 주택으로 사용되다가 지난 1992년 상하시 루완취 인민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 보존단위로 결정함에 따라 다시금 꾸며졌고 일반인에게도 개방됐다고한다.

  지난세기초 한민족이 일으킨 거족적 3·1운동은 일본의 식민지 국민이자 천황의 신민(臣民)으로 잠들어있던 한민족이 깨여나 하나 되는 계기가 되였다. 일제 식민지의 억압에서 풀려나려는 민족적 저항운동의 횃불이 들판의 불길처럼 맹렬히 번져 가던 1919년 4월 10일. 20여명의 지사들이 당시의 법조계(法租界, 프랑스 조계) 마랑로(马浪路) 보경리(普庆里) 4호에 모여들었다. 그날 밤 국회 격인 "임시 의정원"을 구성했고 머리를 맞대고 민족의 중흥을 위한 지혜를 모았다.

  임시정부 수립 당시의 참여자로는 조동호, 여운형, 손정도, 조소앙, 김철, 선우혁, 한진교, 신석우, 이광수, 현순, 신익희, 조성환, 이광, 최근우, 백남칠, 김대지, 남형우, 이회영, 이시영, 이동녕, 조완구, 신채호, 진희창, 신철, 이영근, 조동진, 여운홍, 현장운, 김동삼 등 29인 이였다.

  이날 탄생한 정부는 항일독립투쟁을 지휘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 각지에 설립되였던 정부들이 통합하여 발족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였고 민주공화제 국가 수립을 위해 그들이 건넌 징검다리의 맨 처음 디딤돌이였다.

  그로서 이곳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했던 소중한 장소로 각인되여왔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국공산당 지하당과도 연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늑대처럼 번뜩이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서였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일본의 탄압을 피해 임시정부를 여러차례 옮겼다. 1932년 4월29일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의사의 폭탁투척사건 이후 일본군의 탄압에 절강성 가흥시로 옮겨가게 되였다. 그외에도 항저우, 창사, 광저우, 충칭 등지로 고달픈 여정은 1945년 일제가 무너질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상하이 임시정부는 시종 일제에 맞서 외롭고 의롭게 투쟁했다. 이렇게 선후로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국의 신분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5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청사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마루를 깔았는데 관객들은 저마다 가이드가 넘겨주는 비닐 덧신을 신고 들어섰다. 제복차림을 한 몇명의 여성 직원이 안내를 맡아주었다.

  유적지 청사는 15평 정도나 될까한 아주 좁은 공간이였다. 각 층마다 당시 활동모습을 추적하여 전시관으로 꾸며 놓고 임시정부의 활약을 담은 관련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당시 쓰였던 가구, 서적, 사진 등이 전시되여 있어서 그 당시 시대 상황을 리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청사 주 출입구에 들어서자 정면에 백범 김구선생의 흉상이 보였다. 1층에는 회의실과 주방이 있었다. 1층에서 임시정부의 건립과 활동에 관한 비디오를 5분쯤 시청하고 웃층으로 올라갔다. 나무로 된 좁고 낮은 계단은 머리가 닿을듯 하여 고개를 숙이고서야 올라갈수 있었다.

  2층에는 임시정부 수반의 집무실과 회의실이 있었다. 집무실에는 당시 사용하던 태극기와 나무침대와 식탁, 조촐한 주방가구가 있었다. 식탁우에는 백범 김구선생의 가족사진도 놓여 있었다. 회의실에는 여러명이 앉을수 있는 의자와 회의용 탁자가 놓여 있었다. 집무실 책상에 임시정부 요인들의 밀랍인형이 설치되여있었는데 그들은 금방이라도 일어나 뜨거운 악수를 청할것만 같았다.

  3층에는 임시정부 요인숙소가 있었고 임시정부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 주요 인사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속에서 과거의 주역들은 신념으로 그득찬 찬 형형한 눈빛을 짓고있었다.

  아쉽게도 전시실에서의 사진촬영은 금지되여 있었다. 여성직원들이 서투르나 분명한 조선말로 "사진 찍지마세요!"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래서 임시정부청사 머리돌(定礎式)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며 아쉬움을 달랠수 밖에 없었다.

  출구쪽에는 기념품점을 앉혔다. 기념품점에서는 백범 김구선생의 얼굴이 찍힌 마크며 임시정부 유적지 사진을 박은 열쇠고리며 우표, 휘장, 배지, 악세사리, 장식품 등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현재의 임시정부 유적지는 한국 삼성물산과 독립기념관 그리고 한국의 독지가들의 성금으로 복구되였는데 상하이시 관광국에서 맡아 관리를 하고 있다고한다. 한해 20만명이 넘는 한국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상하이에 몰아치는 개발의 광풍으로 임시정부 유적지 주변은 모두 고층 빌딩과 현대식 주거 시설에 포위되여 있었다.

  여일중천(如日中天)한 "신천지"에서 비록 지금은 작고 허름한 건물만이 남아 주택가사이에 묻힌 "고적지"로 되여 버렸지만 좁고 누추한 거처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혼신을 다했던 선열들의 채취가 역역하게 남아있는듯 해 숙연하게 옷깃을 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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