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사진)스티븐슨씨가 자신의 대표 칵테일인‘미스터 하이드의 픽서 업퍼’를 만들고 있다. 홍차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어 나오는 김으로 향을 더하는 칵테일이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英 칵테일전문가 스티븐슨, 오크통서 수개월~수년 숙성… 공기와 산화, 맛 부드러워져
"와인이나 위스키를 숙성한다는 얘긴 들어봤어도 칵테일을 숙성시킨다는 건 처음 듣습니다."(기자) "영국과 미국에서도 1~2년 전부터야 알려지기 시작한 최첨단 칵테일 트렌드라 모르는 이들이 많아요."(트리스탄 스티븐슨)
1930~40년대 잠깐 유행하다 사라졌던 '숙성 칵테일(aged cocktail)'이 최근 다시 조명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가장 앞서가는 칵테일바로 평가받는 '펄(Purl)'의 주인 겸 믹솔로지스트(mixologist·칵테일제조전문가) 트리스탄 스티븐슨(29)씨가 12일까지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블러쉬' 바에서 자신만의 '숙성 칵테일'을 선보이기 위해 한국에 왔다.
스티븐슨씨에게 숙성 칵테일의 과학적 원리부터 물어봤다. "와인이나 위스키와 마찬가지로 칵테일도 숙성시키면 공기와 반응해 산화(oxidize)하면서 맛이 부드러워집니다. 칵테일을 구성하는 여러 재료가 각각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융합된 맛을 내게 되죠. 오크통에서 우러나오는 성분이 더 다양한 맛과 향을 칵테일에 더하기도 합니다."
스티븐슨씨에 따르면 칵테일을 숙성시키는 데에는 오크통이나 유리병, 두 가지를 쓴다. "오크통을 이용하면 오크통을 구성하는 참나무에서 바닐린(vanillin) 등 다양한 성분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바닐라향, 캐러멜 향, 단맛 등이 칵테일에 더해지는 거죠. 또 나무 사이를 공기가 들어가고 나가면서 칵테일과 접촉하고 반응해 칵테일 맛이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그는 "반면 유리병에서는 다른 맛이나 향이 칵테일에 추가되지는 않지만 융합을 통해 여러 다양한 맛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효과는 있다"고 설명했다.
스티븐슨씨는 "숙성에 적합한 칵테일이나 술 종류가 따로 있다"고 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 좋습니다. 도수가 낮으면 와인의 경우처럼 산화 과정에서 맛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민트를 넣는 모히토처럼 생 허브(herb) 등 상할 수 있는 재료가 들어가는 칵테일도 숙성용으로는 알맞지 않고요."
인터뷰에 앞서 스티븐슨씨에게 한국 술로 숙성 칵테일을 만들어달라고 미리 부탁했다. 그는 "이번에 처음 맛봤다"는 소주와 막걸리, 옥수수차를 이용해 새로운 칵테일을 개발했다. "소주는 무미하면서 알코올도수가 높아 숙성 칵테일로 적당합니다. 여기에 막걸리를 더해 단맛을 냈지요. 옥수수차는 특유의 은은하고 달콤한 맛과 향이 막걸리와 잘 어울리더군요. 오크통에서 우러나오는 바닐라향이 더해지면 기가 막힐 것 같아요." 그는 이 칵테일을 오크통에 담으면서 "6~8주 정도 숙성시키면 알맞을 듯하다"면서 "더 오래, 1~2년 정도 숙성시키면 어떻게 진화할지 나도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이 '한국형 숙성 칵테일'에 '올드 보이(Old Boy)'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성윤 기자 gourme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