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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사절은 송나라의 파계승을 만났을까[제25편]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6.09.30일 14:32
조선반도의 삼국승려와 대륙고찰 이야기

  베이징 김호림 특별기고

  (흑룡강신문=하얼빈) 제목부터 빗나가지 않았냐고 누군가 힐문할지 모르겠다. 고려는 삼국을 지나고 통일신라를 뒤로 하고 있는 왕조이니 말이다. 삼국 시대의 승려가 고려 시대까지 내처 장수를 했으면 또 모를까…

  "고려의 스님을 따라 '타임머신'을 타고 삼국으로 가는 셈이죠."

  "하나의 물방울에 옹근 우주가 비낀다." 우리가 찾은 이 천년의 고찰은 서울 장안을 드나드는 역로의 길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실제로 고려의 사절과 승려는 옛 문헌의 행간에 불쑥불쑥 나타나 이 고찰을 만나고 있다. 고려의 사절과 승려에 앞서 삼국의 사절과 승려 역시 고찰에 들릴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상 고찰이 있는 개봉(開封) 자체가 일찍 춘추(春秋) 시대에 생겨난 성읍이다. 그때 장공(庄公)이 정(鄭)나라의 동북 변강에 있는 이곳을 선정하여 식량을 저장하는 도성을 축조하고 '계척봉강(啓拓封疆)'이라는 뜻으로 '계봉(啓封)'이라 명명했다, 서한(西漢) 때 경제(景帝)가 즉위하자 경제의 이름 유계휘(劉啓諱)를 피해 열 '계(啓)'를 같은 의미의 열 '개(開)'로 고쳤으며 계봉을 개봉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우왕묘 부근의 엉뚱한 풍경, 우왕이 담배와 술을 즐겼던가.

  개봉은 중국 8대 고도(古都)의 하나로 북송(北宋) 시기에는 당시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대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명화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가 북송의 이 동경(東京)을 배경으로 창작되었듯 많은 역사 이야기는 이 동경에서 생겨나고 기록되고 있다. 중국의 4대 고전명작의 하나인 '수호전(水滸傳)' 역시 북송 말년 개봉의 북쪽지역 양산(梁山)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108명 호한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삼국이 아니라 유독 고려 승려의 행적만 개봉에 남고 있는 원인을 알 것 같다.

  이러니저러니 택시 기사가 말하고 있는 상국사(上國寺)는 더는 옛 사찰이 아니었다. "황하(黃河)가 범람하면서 훼손되었지요, 지금은 새로 지은 사찰인데요."

  역사상 황하는 한두 번만 범람한 게 아니었다. 개봉에 물난리가 자꾸 생기자 명(明)나라 가정(嘉靖) 2년(1523), 성읍의 동남쪽 언덕 위에 우왕묘(禹王廟)를 세운다. 그러나 치수의 공적을 쌓은 대우(大禹)의 이름도 제멋대로 날뛰는 황하를 더는 길들일 수 없었다. 명나라 말, 개봉은 황하가 범람하면서 물에 잠겼으며 상국사는 전부 폐허가 되었다. 청(淸)나라 건륭(乾隆) 31년(1766), 옛터에 사찰을 재건했지만 도광(道光) 21년(1841), 황하의 언제가 터지면서 개봉 성내에 또 물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택시 기사가 화제에 올린 황하의 범람은 분명히 청나라 때의 이 마지막 물난리였다.

  사실 상국사는 천재(天災)만 아니라 모진 인재(人災)를 겪고 있었다. 북제(北齊) 천보(天保) 6년(555) '건국사(建國寺)'라는 이름으로 개봉에 나타난 얼마 후 곧바로 병란으로 훼손되었다. 당(唐)나라 경운(景雲) 2년(711) 재건했고 이듬해 예종(睿宗)이 상왕(相王)의 신분으로 황위를 계승하면서 '대상국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그 후 금(金)나라와 원(元)나라 때 전란으로 엄중하게 훼손되었으며 날을 따라 내리막길을 걸었다. 명나라 때 태조 주원장(朱元章)이 여러 번 상국사를 재건하면서 흥성했으나 나중에 물난리를 만나 폐허로 된 것이다.


개봉의 고찰 상국사.

  택시는 길 어구에서 멈췄다. 상국사로 가는 길은 일방통행이었던 것. 차의 흐름을 거슬러 사찰로 향했다. 천년의 고찰은 그렇게 세월의 저쪽에서 지척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불현듯 길가에 장마당 건물이 나타났다. 이름하여 '대상국사 시장(市場)', 시장 어귀에 돌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약간 얼떨떨했다 장마당에 사찰이 있는 걸까 아니면 사찰에 장마당을 벌인 걸까…

  북송 때 상국사는 근처에 변하(卞河)가 있었고 부두가 있었기 때문에 개봉의 아주 번화한 민간교역 장소였다. 달마다 절간장이 다섯 번 열렸고 상인이 만 명으로 헤아렸다고 한다. 와중에 이청조(李淸照)는 달마다 초하룻날과 보름날이면 상국사 일대에 가서 서예와 그림 작품을 사들였다. 참고로 이청조는 북송 시기의 유명한 여류시인이다. 그는 작품을 사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고 새 옷을 입지 않은 일화를 문학사에 남기고 있다.

  이청조와 같은 '백락'이 개봉에 운집하고 있어서 상국사가 '천리마'의 고향으로 되었을지 모른다.

  당나라 때 상국사에는 유명한 벽화와 서예 작품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그림의 성인'으로 불리는 오도자(吳道子) 등 많은 화백과 지엄(智儼) 등 명승이 상국사에 작품을 남겼다. 송나라 때 상국사는 황제가 기복(祈福)을 하는 곳이었으며 '황실의 사찰'로 불렸다. 이에 따라 당시 유명한 화백들이 또 사찰에 그들의 작품을 남겼다. 이런 희대의 작품들은 결국 옛 건물과 더불어 다른 세상으로 사라진 것이다.

  옛터에 다시 세운 새 사찰은 장마당에서 불과 수십 보 상거하고 있었다. 수풀처럼 늘어선 부근의 건물에 묻혀서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평일이라서 상국사에서 열리고 있는 행사가 더구나 유표했다. 일명 '성지순례 만리 행'이었는데, 민간인들이 국가종교사무국의 비준을 받아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실행하는 문화교류활동이라고 했다. 자가운전의 방식으로 대륙의 100여개 고찰에 가서 수집한 신자들의 소원에 대해 기복을 한다고 한다. 물어보니 대륙의 남단인 해남(海南)에서 시작하여 네팔의 석가모니 탄생지까지 무려 2만㎞를 답파한다고 한다.


수양버들을 뿌리채 당겨서 뽑고 있는 노지심.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도 몰래 혀를 찼다. "불자님들의 '중국 꿈'이겠지요? 정말로 대단한 수행을 하고 계십니다."

  '중국 꿈'은 얼마 전 대륙에 등장한 신조어로 중화민족의 부흥을 말한다. "'중국 꿈'을 이루자"는 글귀는 승려가 외우는 염불처럼 사찰 어구의 전광판에도 떠오르고 있었다.

  기왕 말이 났으니 말이지 고찰 상국사는 옛날 대륙만 아니라 외국 승려의 '해외의 꿈'을 이루는 도장이었다. 일찍 당나라 때 상국사는 벌써 대륙 불교활동의 거점으로 되고 있었다. 대륙에 와서 구법을 했던 일본의 고승 구카이(空海)는 상국사에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전한다. 그처럼 바다를 건너온 삼국의 승려도 상국사를 찾을 법 한다. 미구에 송나라 때에는 보다 많은 나라의 외교사절과 승려가 상국사에 와서 참배하고 불법을 배웠다.

  반도의 고승 의천(義天, 1055~1101)도 마찬가지였다. 의천은 고려 문종(文宗)의 아들로 고려 천태종(天台宗)의 대표인물이다. 1085년, 의천은 바다를 건너 구법행을 하는데, 개봉에서 약 1개월 체류한다. 이때 그는 상국사에서 운문종(雲門宗)의 고승 종본(宗本)을 방문하고 흥국사(興國寺)에서 인도의 고승 천길상(天吉祥)을 만나 범학을 배운다.

  고승 종본은 송나라의 왕실에서 존경을 받는 선(禪)의 거장이었다. 종본은 특별히 승당(昇堂)하여 의천과 선문답을 나눴다. 나중에 종본은 의천에게 "그대는 아직 '화엄경'을 깨닫지 못했다"고 말한다. 의천은 '화엄경'을 수십 번이나 독파한 사람이지만, 참선(參禪)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의천은 대륙에 체류한 14개월 동안 수십 명의 고승과 교류를 했지만 귀국 후 유식(唯識), 화엄(華嚴), 율학(律學), 천태(天台)의 종지를 받아왔다고 말하며 선종은 언급하지 않는다.

  잠깐, 의천은 귀국 후 상국사의 유명한 벽화를 주변에 얘기했는지 모른다. 아니, 상국사의 방문에 앞서 벽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을지 모른다. 의천이 상국사를 방문하기 전, 고려의 사절은 특별히 상국사의 벽화를 찾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나라 희종(熙宗) 7년(1074), 고려의 사신 최사훈(崔思訓)이 여러 화백을 데리고 상국사에 와서 벽화를 전부 모사했다. 그 후 휘종(徽宗, 재위기간 1110~1125) 때 태종(太宗)의 친필 편액 '대상국사'를 사절에게 하사하여 귀국하게 했다고 한다. 상국사는 대륙 불교의 상징적인 도장으로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유명한 상국사에 파계승이 등장하는 것 역시 이 무렵의 일이다. 파계승은 술을 먹고 고기를 뜯고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이는 등 불교의 계율을 제멋대로 어기는 '망나니' 승려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종국적으로 상국사는 이 파계승 때문에 더구나 항간에 명성을 널리 전한다.


호수가에 있는 개봉부.

  정말이지 상국사의 주지 스님을 몰라도 파계승 노지심(魯智深)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 파계승은 원래 송나라 지방의 작은 관리였다. 그는 부녀자를 우롱하는 백정을 때리다가 살인죄를 짓게 되자 오대산(五臺山)에 도망하여 승려로 되었던 것이다. 뒤미처 술을 먹고 계율을 어겨 오대산에서 쫓겨나며 개봉의 상국사에 자리를 옮기게 된다. 상국사의 장로는 노지심을 감히 사찰에 두지 못하고 채마지기로 보냈다. 노지심은 채마전을 노리는 건달들을 혼낸 후 그들에게 수양버들을 당겨서 뿌리 채 뽑는 무서운 괴력을 과시한다.

  '수호전'에 따르면 노지심은 미구에 사찰을 떠나 양산의 열세 번 째 호한으로 된다.

  상국사를 찾는 관광객들이 너나없이 사진을 남기는 장소는 바로 노지심의 조각상을 세운 곳이다. 노지심은 수마선장(水磨禪杖)을 옆에 세워놓고 버드나무를 그 무슨 갈대인양 두 손으로 당겨서 우두둑 뽑고 있었다.

  한국의 고대의 승려는 몰라도 현세의 승려들은 이 파계승과 자주 만나고 있는 듯했다. 상국사를 찾아오는 한국의 승려가 적지 않다고 객당(客堂)의 당직 스님이 소개하고 있었다. 그들은 혹자 팀을 묶어 방문을 하거나 혹자 개인적으로 탐방을 온단다.

  그러고 보면 강 건너 산 너머 '성지 참배'의 '만리 행'은 백년, 천년 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공원은 낮에는 한산한 모습이지만 저녁이면 흥성하다.

  그러나 상국사의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을 듯 했다. 사찰을 나온 일행의 발길은 언뜻 다른 데로 빗나가고 있었다. 개봉의 구경거리가 뭐냐 하고 물었더니 호텔의 도우미가 안내한 곳은 유적 '개봉부(開封府)'였다. '개봉부'는 상국사에서 서너 블록 상거한 가까운 곳이다. 옛날 개봉을 다녀간 사절과 승려도 이 '개봉부'에 족적을 남겼을 수 있으리라. 아쉽게도 개봉부에 도착하니 벌써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고 솟을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마침 '개봉부'의 앞 호수도 개봉의 명승지이었다. 북송 때 청렴한 관리로 소문난 포승(包丞)의 이름을 따서 '포공호(包公湖)'라고 불리고 있었다. 호수의 가운데를 다리처럼 가로지른 언제는 '사회주의핵심가치관'이라는 다른 이름의 주제공원으로 되고 있었다.

  '포공호'가 공원이 아니더라도 옛날 승려가 개봉에 오면 이 도심의 호수를 거닐지 않았을까?…

  솔직히 제멋대로 그린 상상도였다. 눈앞의 풍경이라면 승려는 호수에 그의 그림자가 비끼기 전에 멀리 피했을 듯 했다. 언제에는 남녀 쌍쌍이 짝을 지어 다니고 있었고 혼자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중에 호텔의 도우미가 깔깔 웃으면서 알려준 내막은 '포공'이라는 호수이름은 물론이요, '사회주의핵심가치관'이라는 공원이름과 왕창 엇갈리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언제를 '정인교(情人橋)'라고 불러요. 저녁이면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곳이지요."

  맙소사, 한밤중에 연인들의 성지를 눈을 부릅뜨고 홀로 구경을 다녔으니 이런 꼴불견의 '파계승'이 있을까 싶다. 똑 같은 장소라고 해도 이름이 바뀌고 이야기가 빗나갈 줄을 신선이라고 미리 알고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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