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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뿌리에 대한 관견/정인갑

[중국조선족문화통신] | 발행시간: 2009.08.13일 11:48
최근 토템문화에 대한 쟁론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뿌리(發祥地)가 언급되고있다. 필자는 문외한이므로 이 쟁론에 가담할 생각은 없다. 단 우리 민족의 뿌리에 관하여 관견(管見)을 몇마디 말해볼가 한다.



동아시아 상고(上古)의 민족은 대체로 동이(東夷), 서융(西戎), 북적(北狄), 남만(南蠻), 중하(中夏)로 구분된다. 지금까지의 정설은 우리 민족의 뿌리가 동이로 돼있으나 최근 감숙 돈황설, 즉 서융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등장한 셈이다. 너무 큰 모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우리 민족의 뿌리를 여전히 동이로 보아야 지당하다고 본다.

우리 민족은 상(商)민족과 같은 동이민족



하(夏)는 중원민족이 세운 나라이고, 상(商)은 동이민족, 주(周)는 서융(西戎)민족이 세운 나라임은 정설이다. 우리 민족의 조상은 상민족의 범주에 속하며 심지어 상민족의 주체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필자는 피력한바 있다. 아래에 다시 그 증거를 요약하면―



1) “상이 망하자 기자(箕子)는 조선으로 갔다.” 이 말의 진실성을 고증할 길은 없지만 상이 망한후 그 유민(遺民)이 조선으로 피난간 력사 사실의 반영이라고 보기에는 충분하다. 기자는 피난민의 대표인물이고.

한 민족이 원정을 거쳐 중원에 들어가 통치하다가 망하면 어디로 피난갈것인가? 당연히 고향쪽으로 돌아갈수밖에 없다. 원정전 상민족이 집거한 위치가 딱 조선반도일지는 몰라도, 망할 때는 자기의 고향쪽이면서도 주의 힘이 미치기 어려운 곳이 조선반도였을것이다.

2) 상나라 왕족은 거북의 뼈로 점을 치는 풍속이 있는데―점괘 내용을 적은 글이 갑골문―우리 민족은 점치는데 사용되는 이 동물의 이름을 아예 ‘점 복(卜)’자를 붙여 거북(龜卜, 구복→거북)이라 부른다.

그 당시 거북의 뼈로 점을 치는 민족은 상나라 왕족뿐이였을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갑골문 비밀이 상이 망한후 3,000년이 지난 1898년에야 세상에 알려지기 만무하다. 또한 지금까지 중국의 어느 방언에도 그 동물의 이름에 “복 (卜)”자를 붙여 부르는 말이 없다.

이렇게 볼 때 “거북”이라는 명사를 쓰는 우리 민족과 상민족간에 관계가 없을리 만무하다.

3) 어학적인 증거는 너무나 많다.

ㄱ, 지금 쓰이고있는 한어는 고립어지만 고대한어에는 교착어의 흔적이 보인다. 우리말의 종결토가 고대한어에 거의다 있다: 다(也, ‘也’의 고대한어 발음은 ‘다’), 야(也), 디→지(矣, ‘矣’의 고대한어 발음은 ‘디’), 가 ․ 까 ․ 오 ․ 고(乎), 여 ․ 요(歟)….

ㄴ, 상고한어(上古漢語)의 인칭대명사에 격의 흔적이 보인다: 汝(주어, 목적어 기능이 위주)/乃(한정어로만 쓰임), 발음이나 문법적 기능이나 우리말 2인칭 대명사 “너”, “네”와 비슷하다. 我/吾도 우리말의 “나”, “내”처럼 문법 기능상의 차별이 있다.



ㄷ, 우리말 고유어에 상고한어와 대응되는 어휘가 적지 않다: 짐승/衆生 (상고한어에서 ‘衆生’을 ‘짐승’처럼 읽었음), 섣 ․ 설/歲(‘歲’를 ‘셛’처럼 읽었음), 좀/蟲(‘蟲’을 ‘좀’처럼 읽었음), 되놈/夷戎 (‘夷戎’을 ‘되놈’처럼 읽었음), 듣 ․ 들/等(‘等’을 ‘듣’처럼 읽었음)…

상기 ㄱ, ㄴ, ㄷ는 무슨 계시를 주는가?

ㄱ, 원고(遠古)시대의 중국어는 원래 교착어던것이 점점 고립어로 바뀐듯 하다. 상나라 말은 거의 우리말과 같은 교착어였는데 고립어를 쓰는 주나라 민족이 통치민족으로 되고, 기초 방언도 중원에서 서쪽(섬서)으로 옮겨지며 서서히 고립어로 변하였으므로 고대한어는 옛날로 올라갈수록 우리말과 닮은데가 많다는 분석이 맞을듯 하다.

ㄴ, 만약 우리 민족이 후세(이를테면 한나라 때부터)에 한자문화를 접수하였다면 우리말의 고유어에 한자와 관계되는 “짐승, 섣, 설, 좀, 되놈, 들”과 같은 어휘들이 있기 만무하다. 한(漢) 이후부터 이런 글자를 “짐승, 섣, 설, 좀, 되놈, 들” 등으로 읽지 않았으니 말이다. 우리가 상민족으로서 중원에서 쓰던 말을 조선반도로 가지고가서 계속 썼다고 풀이하는수밖에 없다.

ㄷ, 갑골문에 개고기로 제사지내는 기록이 적지 않게 나온다(개고기로만 제사 지낸것은 아니지만). 자기 조상이나 하느님에게 시시한 음식으로 제사 지낼수는 없다. 그러나 주나라로 진입한후 개고기가 각광을 잃었으며 소, 양, 돼지 고기로 바뀌였다.

세상에서 우리 민족만치 개고기를 선호하는 민족이 없음즉 하다. 이 역시 우리 민족과 상민족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암시한다고 할수 있다.

이상 4가지 증거는 확실하게 단언할수는 없지만 상나라 동이민족과 우리 민족의 조상을 련결시키는데는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우리 민족이 서융(西戎)이 아님이 뚜렸하다.

주차(主次)를 구분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이 료녕으로부터 조선반도에 분포돼있던 동이민족에 속하는 민족이며 이 민족은 언어학적으로 볼 때 알타이산맥으로부터 동쪽으로 확장돼온 퉁구스민족과 밀접히 관계된다고 보는데는 큰 애로가 없다. 그러나 중국 내지로부터 이민온 다른 민족과도 관계가 있었을것이다. 문제는 이 관계를 어느 정도로 보아야 하는가이다.

일반적으로 인구나 령토가 점점 확장된 민족은 뿌리가 여러 갈래이며 복잡하고 심지어 교체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테면 중화민족은 하나라 때는 주체민족이 하(夏)민족이고, 상(商)나라 때는 동이민족이였으며 주(周)나라 때는 서융민족이였고, 그후 북방 지역은 북저(北狄)민족이 주체민족이였던 력사도 짧지 않다.

그러나 령토나 인구가 점점 위축된 민족은 퍽 단순하다. 우리 민족은 몇천년전부터, 적어도 2천년전부터 인구나 령토가 점점 위축되여 변방 벽지로 밀려나간 민족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뿌리가 타지역으로부터 이민온 민족에 의해 흔들렸거나 바뀌였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한나라 초기 연(燕)의 장군 위만(衛滿)이 조선으로 망명가서 조선왕이 되였지만 그가 거느리고 간 사람은 천여명밖에 안되였으며 머리나 의상을 변방종족으로 가장하고 갔다(: ‘滿亡命, 聚黨千餘人, 魋結蠻 夷服而走東塞’).

위씨조선 퍽 후의 진한(辰韓)은 중원에서 간 진(秦)의 피난민이라고 하지만 삼한(三韓)중 작은 나라였고 마한(馬韓)의 곁방살이를 하였으며 마한의 통치를 받았다 (: ‘馬韓最大…盡王三韓之地…辰韓…適韓國, 馬韓割東界地 與之.’).

위만이 고조선의 왕을 하였지만 과두(寡頭)통치자에 불과하였을것이고 진한도 인구로 보나, 그 지위로 보나 보잘것 없었다. 위만이 내지인이라고 하건, 진한(辰韓)민이 중원인이라고 하건 모두 우리 민족의 뿌리를 흔들거나 심지어 우리 민족의 주체로 되여 뿌리를 교체하였을 가능성은 근본 없다.

이상 두차례가 력사적으로 고증할만한 우리 민족안으로 들어온 타민족의 규모가 가장 큰 이민이다. 이 두번보다 규모가 작은 이민이 끊임없었겠지만 그들이 우리 민족의 뿌리로는 더더욱 못된다.

양만연(楊萬娟)의 «韓國文化與中國楚文化近源初探»61)에서 마치 진한을 수반으로 신라가 생겼고, 또한 우리 민족의 뿌리로 되였고, 초나라의 라(羅)씨, 로(盧)씨를 수반으로 하는 중국 이민이 한국의 주체민족, 결정적 문화로 된듯이 이야기하였지만 모두 억지공사로 보아야 한다.

중국인이 감숙 돈황, 신강 천산, 옛 초나라 등에서 조선반도로 이민간 사람이 있을수 있다. 그러나 수량상 매우 적어 당시 조선반도에 거주하고있는 우리 민족의 수자와 대비할 때 창해일속에 불과할것이다. 그들이 자기가 처한 지역에서 문화적으로 일정한 영향을 끼칠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령혼을 흔들고 뿌리를 교체할 정도에는 어림도 없다. 그들은 한동안 존속하다가 이내 우리 민족에 동화되고말았을것이다.

과학적 근거만이 설득력 있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동이로부터 서융으로 교체시키려면 무엇보다도 과학적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 몇개의 고유명사가가 같다고 하여 돈황이다, 천산이다, 옛 초나라다고 마구 가져다붙이는것은 모험적인 발상이다.

얼마전 한국의 모 교수가 만족(滿族)의 황족 성씨를 일컫는 “愛新覺羅”를 “신라를 사랑하는…”으로 풀이하고 만족을 신라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글을 내놓았다. 필자는 만족어를 1년간 배운적이 있다. 만족어에서 “愛新覺羅”를 “아이신궤로”로 읽으며 “아이신”은 “황금”이라는 뜻이고, “궤로”는 “모자의 술”이라는 뜻이다. “아이신궤로”는 “금실로 만든 모자의 술”이다. 신라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필자는 조선 평안남도 중화군의 삼정리(三井里)에 우연히 들린적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저희 동네 이름이 “세우물리”이며 자기네는 예로부터 이렇게 불렀지 삼정리로 부른적이 없다고 한다. 조선반도의 지명은 거의 다 옛날에는 고유어로 부르다가 후세에 점점 한자로 교체하였다. 교체하는 와중에 중국의 모 지명들과 우연히 같아지는 경우가 생길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삼위(三危)”요, “태백(太白)”이요, “한양(漢陽)”이요 하는 지명이 중국에도 있다고 하여 같이 보며 심지어 이민사와 련결시키는것은 무리다. 사실 한강은 큰 강(한, 고유어 크다의 뜻. 큰아버지→한아버지→할아버지, 큰어머니→한어머니→할머니 참조)이지 “한(漢)”자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또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사대주의에 너무 물젖어 중국 지명을 퍼다가 한국 지명에 썼거나, 중국 성씨를 퍼다가 자기의 성씨로 만들었거나, 자기 조상의 발원지를 중국의 어디어디라고 족보를 위조하는 병페가 많았다. 이런것들을 걸러버리려면 상당한 연구가 진행되여야 할것이다.

서북 돈황은 사막지대여서 몹시 무덥기에 그곳 사람들은 흰옷을 선호하였으며 이것이 우리 민족이 흰옷을 선호하는 유래라고 하였는데 역시 억지공사다. 필자는 돈황지역에 여러번 가보았지만 그곳이 그리 덥지 않으며(적어도 료녕, 조선반도보다는 안덥다) 흰옷을 입은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색갈이 진한(검은 색, 진한 곤색) 옷을 입는다.

이상의 방법은 모두 과학적이 못된다.

만족어와 우리말 사이에는 어원이 같은 말이 적지 않음을 발견할수 있다. 례를 들면 코(물도랑. 우리말 ‘논의 물고 보다’ 참조), 아시(새롭다. 우리말의 ‘아시어머니’, ‘아이[시]김을 매다’, 동북 지명에 많은 아지푸자 ‘阿及堡子=새마을’ 참조), 안(긴 시간. 함경도 방언의 ‘안새[긴시간]’ 참조), 서러머(말하다. 평안도 방언의 ‘그래 서라머니[그래서 말이야]’참조)….

만족어와 몽고어 사이에 어원이 같은 어휘는 더욱 많다고 한다. 이상은 우리말, 만족어, 몽고어는 모두 알타이어, 같은 퉁구스민족임을 말해준다. 감숙 돈황, 신강 천산에서 온 민족이 아님이 역시 분명하다.

조선사회과학원에서 편집, 1970년대에 완간된 «조선전사(朝鮮全史)»는 우리 민족의 뿌리를 비교적 과학적으로 제시하였다. 본 책에서는 같지 않은 인종, 같지 않은 지역 인간의 피부의 흑백도(黑白度), 머리칼의 골직도(曲直度), 안구(眼球)의 색갈, 광대뼈의 높이와 넓이, 평균 신장 등을 광범위하게 분석한후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동북아시아에서 거주하여온 인종임을 피력하였다(«조선전사» 제1책 참조).

중국 력사는 기원전 841년부터만 정확히 년대를 표시할수 있고 그전은 대충 짐작만 하여왔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 “하상주 단대프로젝트(夏商周 斷代工程)”이라는 이름을 걸고 200여명의 학자(력사학, 고고학, 언어학, 문헌학, 천문학, 물리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을 동원하여 5년간 연구하였다. 그런 연후에 하상주의 비교적 정확한 년대를 발표하였다. 그것도 조심스럽게 발표하며 상대 오차가 30년 정도는 있을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동에서 서로 옮기려면 적어도 “하상주 단대프로젝트” 못지 않은 학자를 동원하여 5년보다 더 긴 시간을 리용하여 연구하여야 할것이다. 우리 민족의 뿌리에 관하여 새로운 관점을 내놓는 사람들이 아직 이런 연구를 거치지 않은것 같으며 앞으로 이런 연구가 실행될수 있겠는지 근심이 간다.

가장 과학적이면서도 빠른 방법은 유전자학설을 리용하는것이다. 유전자 관련 전문가들을 조직하여 감숙 돈황지역, 신강 천산지역 및 우리 민족의 발상지라 추측되는 모든 지역의 사람들의 유전자를 측정하여 우리 민족의 유전자와 대비해보는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작자 E-mail: zhengrenjia@263.net

주해:

61)中南民族大學學報 2005, 1. 양만연(楊萬娟)은 중남민족대학 남방소수민족연구중심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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