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캡처=아우크스부르크 홈페이지
18일(한국시각) 레버쿠젠전에서 골을 터트린 구자철(23·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은 그라운드에 누웠다. 지난해 1월 독일 무대를 밟은 이후 줄곧 생각해왔던 멋진 세리머니는 아니었지만, 그간의 마음고생을 날려버리는기에는 충분했다.
구자철의 이번 시즌 목표는 '0골-0도움'이었다. 차근차근 독일에 적응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펠릭스 마가크 볼프스부르크 감독은 구자철을 신뢰하지 않았다. 경기 시작을 몇 시간 앞두고 느닷없이 생소한 포지션인 측면 미드필드로 나가라고 통보했다. 영입을 제의한 함부르크나 하노버로 떠나고 싶었지만, 마가트 감독은 놔주지 않았다. 전반기 막바지 조금씩 출전기회를 늘렸지만, 분명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부진은 대표팀에서도 이어졌다. 구자철은 조광래 전 A대표팀 감독의 신뢰속에 매경기 선발로 나섰지만, 좀처럼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을 거머쥔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부진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출전으로 대표팀 해외파 우대의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어려운 시기만 넘기면 금방 제 모습을 찾을거라고 믿었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아우크스부르크로의 임대 이적이 반전의 계기가 됐다. 요한 루후카이 감독의 믿음 속에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볼프스부르크에서와 마찬가지로 왼쪽 미드필더로 나서고 있지만, 예전과 분위기가 다르다. 구자철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18일 레버쿠젠전(1대4 패)에서의 데뷔골은 달라진 구자철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골이다.
이 골로 구자철은 팀 내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루후카이 감독은 구자철을 사실상 '프리롤'로 기용해 공격전개를 맡겼다. 구자철은 묄더스, 외를 등을 이끌고 롱볼 위주의 아우크스부르크에 아기자기함을 더했다. 구자철은 측면에서 활약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한 듯 보였다. 경기력도 만족스러웠는데 골까지 넣었다.
무엇보다 구자철이 갖고 있던 '에이스 본능'을 되찾게 했다. 구자철은 K-리그 제주와 각급 대표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나섰고, 주장으로서 탁월한 리더십을 보였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경기를 주도해 왔다.
이제 볼프스부르크 시절 주눅들었던 모습에서 벗어나, 이번 골로 '자신감'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는데 성공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