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이상 방치 47만개
마약·장기매매 등 악용
경찰·방송통신심의위는 인력부족 이유 단속 손놔
고등학교 1학년인 박모(15)군은 올해 1월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음료에 GHB(물뽕)만 섞어 넣으면 여자 작업률 성공 100%"란 광고문구를 보고 솔깃했다. 변종 마약의 일종인 '물뽕'을 살 수 있다는 게시물이었다. 포털 사이트를 통해 '물뽕'이란 단어를 검색하니 단박에 이 글이 나왔다. 박군은 게시물에 적힌 계좌번호로 현금 30만원을 보냈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방치된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해 마약 거래 글을 올리고 돈만 받아 챙긴 일당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관리자 없이 버려진 사이트가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단속이 어려운 해외에 마약 거래, 불법도박 등 범죄 사이트를 만든 뒤, 쉽게 검색이 되도록 국내 사이트에 링크해 네티즌을 유인하는 창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도산한 중소기업의 홈페이지 등이 주요 표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방치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은 포털 등에서 손쉽게 검색할 수 있어 성인은 물론 청소년까지 현혹하고 있다"고 말했다.
19일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 따르면, 6개월 이상 방치돼 불법 정보가 오가는 창구가 될 우려가 있는 휴면 사이트(포털의 블로그ㆍ카페는 제외)는 2006년 기준 46만6,000여개로 전체의 14.5%다.
최근 3년 새 불법 정보가 유통됐다 적발된 사이트가 급증한 것을 볼 때 방치 사이트가 범죄의 도구로 다수 활용되고 있다는 게 경찰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판단이다. 방심위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마약, 온라인도박, 장기매매, 자살유도 등 불법 정보를 유통하다 적발된 사이트는 9,607건에서 3만8,109건으로 4배 가량 뛰었다. 방심위는 미처 적발되지 않은 사이트까지 감안하면 10만개를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관계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불법 정보 거래 사이트를 찾아내 해당 업체에 폐쇄 또는 삭제 등을 요구할 책임이 있는 기관은 방심위이지만,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찰에만 의존하고 있다. 방심위 관계자는 "불법 정보가 거래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이트는 10만개 정도로 추산되지만 이를 점검하는 모니터링 요원은 31명밖에 되지 않는다"며 "경찰이 적발해 알려온 경우에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더구나 방심위의 조치는 시정권고에 그칠 뿐 강제력 있는 제재는 다시 방송통신위원회에 회부해야만 가능하다.
경찰이라고 나을 게 없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우려해 문제가 되는 사이트를 적발해도 방심위로 떠넘기는 것이 고작이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가 모든 게시물을 적발해 방심위에 신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소속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은 "인터넷에 불법 정보가 넘쳐나는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며 "휴면 사이트 일제 점검 등 반사회적 불법정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