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미술관 연구원이며 미술평론가인 류희림
2월 21일, 중국미술관 연구원이며 미술평론가인 류희림은 “충혼의 넋 예술인생- 《한락연을 기리며》 도서출판 좌담회”에서 “한락연의 예술”에 대해 전반적으로 조명했다.
“한락연의 예술” 강연을 하고 있는 류희림 미술평론가
그는 한락연의 예술인생을 30살 이전의 “조기예술과 혁명활동”, “8년간의 빠리류학”, “봉화의 나날”들로 나누어 그가 그려온 그림과 사진들을 펼쳐보이며 생동감있게 설명했다.
상해미술전과학교 학생들이 야외에서 소묘를 하고 있는 장면(1918)
류희림은 “조기예술과 혁명활동”단계에 한락연은 회화와 독서를 즐기는 청소년이였으며 상해미술전과학교에 입학하여 수채화, 유화를 익히고 만화가 로소비(鲁少飞)를 만났다고 말했다.
집을 그려서 집주인에게 팔았던 시절 그렸던 그림
류희림은 또 “8년간의 빠리류학”단계에서 한락연은 부자집 동네에 가서 아름다운 집을 그리고 집주인에게 그 그림을 팔기도 했다고 했다. 1931년 한락연은 루부르예술학원에 입학했고 3차례 개인전시회를 개최하고 “프랑스류학 중국예술학회”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그림을 그리면서 혁명사업을 하는 풍격은 피카소와 다를바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돈황막고굴의 벽화를 모사한 작품
류희림은 “봉화의 나날들”은 1937년 부터 1943년, 1943년부터 1947년 두 단계로 다시 나누어서 평가, 첫 단계에서는 “반공”잡지에 그림을 그리고 “전민항전”이라는 대형화폭의 그림을 황학루에 걸어놓는 등 그림을 무기로 혁명의 기발을 들기도 했다고 평가했고 두번째 단계에서는 서북에서 벽화를 연구하고 고고학적인 성과를 남겼다고 말했다.
류희림은 1953년 한락연 부인인 류옥하녀사는 한락연의 유작 135점을 국가에 기부했고 1963년에 중국력사박물관에서 중국미술관으로 옮겨 소장하고 있다면서 한락연은 평생 2000점의 회화와 사진을 남겼다고 말했다.
1940년대 자화상
그는 한락연 작품을 초상화, 민속세태와 풍속, 자연풍경과 건축의 묘미를 그려냈고 유화 수채서화(水彩西画)의 형식으로 중국의 벽화를 모사한 창시인이라고 밝혔다.
로동인민의 근면정신과 부녀들의 질고를 반영한 녀목공
류희림은 또 한락연의 로동인민을 주목하고 그들을 소재로 작품을 그린 서민의식과 리얼리즘의 정신을 가진 예술가 가운데 한사람이며 대자연을 사랑한 풍경화가이며 건축과 풍경의 묘미를 담을줄 아는 화가였으며 락관적인 정신과 불굴의 혁명예술가로서의 정신을 가진 화가라고 평가하면서 한락연은 피로 물든 단청의 길을 개척하던 선구자라고 말했다. 전정옥 기자
도중에서 예배 (1946)
비속의 천지(1946)
케질(克孜尔) 석굴에 한락연이 남긴 기록(题记)
출처:료녕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