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14일 새벽(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 위치한 자심 빈 하마드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8차전 대한민국과 카타르의 경기에서 카타르를 상대로 2대 3으로 끌려가고 있다. 2017.6.14/뉴스1 © News1
카타르는 신나게 축구했고 한국 선수들은 몸이 굳었다. 2017년 6월, 한국 축구의 현실을 보았다.
과거 한국 축구는 아시아의 맹주로 통했다.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값만으로도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수준이었다. 한국과 만나는 상대들은, 어떻게든 비기기라도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객관적 열세를 인정하고 임했다. 망신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소극적 자세도 있었다.
때문에 아시아권 국가들과 싸우는 한국의 가장 큰 고민은 소위 ‘밀집수비’, ‘침대축구’ 등 무작정 비기려고 걸어 잠그는 상대를 어떻게 뚫어낼 수 있을까에 맞춰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나브로 옛날이야기가 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제 한국을 두려워하는 나라는 보이지 않고 있다. 조 최하위에 그치고 있는 나라도 한국을 상대로 신나게 싸웠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4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자심 빈 하마드경기장에서 열리는 카타르와의 최종예선 8차전에서 2-3으로 패했다. 4승1무3패, 승점 13점에서 발이 그대로 묶인 한국은 본선진출을 걱정해야하는 초라한 처지가 됐다.
무조건 승리가 필요한 경기였다. 그에 대한 이유는 셀 수도 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FIFA 랭킹 88위, 7경기를 마친 현재 1승1무5패로 A조 최하위에 그치고 있는 카타르전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불안함에 떠는 자체가 과거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현실이었다.
게다 카타르전을 앞두고 마련했던 평가전에서 졸전에 그쳐 걱정은 더 컸다. 한국은 지난 8일 열린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유효슈팅 단 1개도 기록하지 못한 채 0-0으로 비겼다. 가뜩이나 최종예선 원정에서 1무2패에 그치고 있던 터라 심적 부담은 가중됐다. 그래도 설마 싶었다. 하지만 그 설마가 한국 축구를 잡았다.
한국이 공격을 주도할 줄만 알았던 경기는, 뚜껑을 열자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카타르 선수들의 태도와 함께 의외의 방향으로 흘렀다. 카타르는 개개인이 과감하게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고 빠르고 간결한 패스 연계로 한국 수비를 괴롭혔다. 괜스레 라인을 내려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법도 없었다.
카타르 공격수들은 한국 수비와의 일대일 싸움에서 이겼고, 카타르 수비는 한국 공격수들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카타르 선수들은 왕년의 호랑이 한국을 비웃으며 신명나게 자신들의 축구를 구사했다. 반면 슈틸리케호 선수들은, 마치 예전에 한국과 싸우던 상대들처럼 몸이 굳어 제대로 뛰지를 못했다.
전반 34분 공격의 핵 손흥민이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는 생각지 못한 악재가 발생한 것도 손실이 컸으나 사실 손흥민이 있었다고 해도 그리 큰 차이가 있었을까 싶었던 경기력이었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이 공을 제대로 주고받지 못했으니 좋은 내용, 원하는 결과를 기대키 힘들었다.
전반 25분 프리킥으로 선제실점을 내줬을 때, 그 자체는 다소 운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휘슬이 울리는 과정도 심판의 판정에 애매함이 있었고 알 하이도스의 킥도 워낙 좋았다. 심기일전하는 반전을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한숨만 커졌다.
전반전 45분 동안 얼어 있는 한국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감이 더 커졌는지, 카타르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후반 6분 만에 추가골을 터뜨렸다. 이 자체도 놀랍지만 더 주목해야할 것은 이후 시간의 패턴이다.
예전의 상대들이었다면 한국이라는 팀에게 어렵사리 리드를 잡으면 그 스코어를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데 카타르는 아니었다. 2골을 앞서고 있으면서도 정상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침대축구’는 없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국에게 2골을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후반 29분 다시 앞서가는 골을 넣을 수 있었다.
예전의 아시아권 국가였다면, 자신들이 2골을 먼저 넣고 있다 한국에게 2골을 따라잡혔다면 그대로 무너질 수 있었다. 하지만 외려 발끈하고 달려들어 경기를 뒤집었다. 아시아의 호랑이가 이제 호구로 전락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