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많지만 비상대책 요구
임신부가 감염될 경우 소두증(小頭症) 자녀를 출산할 우려가 있는 '지카(Zika) 바이러스'가 중남미를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되면서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대다수 중남미 국가에서 한시적으로라도 낙태 제한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비영리단체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은 "지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낙태가 해결책 가운데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카 바이러스는 남미·아프리카에 주로 서식하는 '이집트숲모기'를 통해 감염된다.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열대 기후에다 공중위생이 좋지 않아 모기가 서식하기 좋은 브라질 등에선 모기를 완전히 차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메이카·엘살바도르를 비롯한 일부 중남미 국가는 앞으로 6개월에서 2년까지 임신 자제 권고령을 내렸으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중남미 시골 지역엔 피임용품이 제대로 보급되어 있지 않은 곳도 흔하다.
하지만 가톨릭 비율이 높은 중남미 대다수 국가에선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은 불법 낙태 시술소를 찾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성·건강 연구 단체인 구트마커 연구소 조사 결과, 중남미 국가의 연평균 낙태 건수는 440만 건이고, 이 중 95%가 안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젤 카리노 IPPF 부회장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신부들이 불법 낙태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감염자들에겐 낙태 수술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각국 정부와 바티칸은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지난 30일 콜롬비아 국립보건소는 "콜롬비아 임신부 2000여명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밝혔다. 전체 바이러스 감염자도 2만명이 넘어 브라질(약 150만명) 다음으로 많다. 영국 가디언은 "지카 바이러스는 서아프리카를 강타했던 에볼라보다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DDT 같은 맹독성 살충제 사용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지난 29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전화 통화를 하고 지카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위해 양국 고위급 실무팀을 설치하기로 했다. 세계보건기구도 1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오윤희 기자 oyounhee@chosun.com]
조선일보